홀로된 노인 / 고재종 Return Nikon D70 홀로된 노인 / 고재종 저처럼 금숭어 튀어오르며 그리는 금빛 아치의 순간을 보는 저 노인, 저리는 발 담그지 않을지라도 강물은 이미 노을에 잘 감전돼 있다. 하룻내내 잘 익은 포도주빛 노을, 그 속에 봉우리를 헹구는 병풍 친 산들은 또 검푸러지며 능선들을 미끈히 뽑을 때 저 노인, 거.. 시집 속 詩 2006.04.15
신의 뒤편 /이정록 신의 뒤편 /이정록 구두 뒤축이 빛난다, 지가 무슨 신이라고 배광을 꿈꿨을까마는 신의 바람이란 발가락처럼 오순도순 어둠과 고린내 속에서도 온 힘으로 떠받드는 것 아니겠는가 상가에 놓인 뒤축 꺽인 내 구두는 이 방 저 방 쉼 없이 돌아다닌다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문지방처럼 빛나는 뒤.. 시집 속 詩 2006.04.11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장무령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장 무 령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어둔 동굴 벽에 새긴 유성이 흐르는 자리 청동의 칼로 성호를 긋고 돌화살촉에 찍어 색 바랜 천장에 붙여 논 수풀 사이 날개를 퍼덕이는 새 떼들 빗살무늬 사금파리를 훔쳐 나오는 꼬마야 정숙한 엄마의 손을 잡고 철기시.. 시집 속 詩 2006.04.07
마중물/ 윤성학 사진 <책향기>님 블로그에서 마중물 / 윤성학 참 어이없기도 해라 마중물, 마중물이라니요 마중물 : 펌프로 물을 퍼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 문학박사 이기문 감수 「새국어사전」제4판, 두산동아) 물 한바가지 부어서 열길 물속 한길 당신 속까지 마중 갔다가 함께.. 시집 속 詩 2006.04.07
이 한권의 책 / 이진심 이 한 권의 책 / 이진심 엉금엉금 기어서 일생동안 겨우 당도한 책상 위에 이 쓸모없는 손을 올려 놓는다 두 손의 겉장은 몇 개의 칼자국과 굳은살로 너덜너덜하게 닳아있다 살아생전의 일을 고하라고 한다면 이 손을 읽어딜라고 간구하겠다 이 손위에 난 흔적들을 들여다보아 달라고 이것이 내 일생.. 시집 속 詩 2006.04.06
뒤란의 봄 / 박후기 뒤란의 봄 / 박후기 그 해 가을, 지구를 떠난 보이저2호가 해왕성을 스쳐 지나갈 무렵 아버지가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함석을 두드리는 굵은 빗줄기처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미군부대 격납고 지붕에서 땅으로 내리꽂힌 아버지가 멀어.. 시집 속 詩 2006.04.06
피보다 붉은 오후 / 조창환 조창환, [피보다 붉은 오후] 푸른 잔디 가운데로 투명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피보다 붉은 모란 꽃잎이 툭 떨어진다 아그배나무 가득 희고 작은 꽃이 바글바글 피어 있다 첫 키스를 기다리는 숫처녀처럼 숲을 설레게 하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술렁인다 이 하늘 아래 빈 발자국 몇 개 남겨놓은 일이.. 시집 속 詩 2006.04.04
내 복통에 문병 가다(일부) /장철문 내 복통에 문병 가다 (일부) / 장철문 그는 앓고 있었네 아무 걱정도 없이 앓고 있었네 그를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친구들이었네 그와 그의 친구들를 바라보았네 통증은 그의 몫이고 불안과 걱정은 그의 몫이 아니었네 친구들은 모두 돌아갔네 -시집 {산벚나무의 저녁} (창작과비평사, 2003/9) 세상.. 시집 속 詩 2006.04.04
수런 거리는 뒤란 / 문태준 수런거리는 뒤란 / 문태준 산죽 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이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 시집 속 詩 2006.04.04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을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 시집 속 詩 200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