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을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민음사, 2001)
키가 훤칠하지도
않고 오히려 작은 편에다 지독히도 못 생긴 나로써는 으기소침해 할 수밖에 없는 시이다
그러나
은사시나무에만 눈썹이나 넓은 잎이 있는 게 아니라 키 작은 나무에도 넓은 잎은 있고 거기에도 아름답게 꿈틀거리는 눈썹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물론 시에서의 키 큰 남자(또는 키 큰 나무)는 딱히 센티미터가 많이 나오는 사람을
말하는 것 보다 그늘이 넉넉하고 마음이 훤칠하며 선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모든 여성이 키 큰 남성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니 문장 그대로
읽는 것도 무방해 보인다. 감평자도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킬 의사는 없다. 왜? 그러면 장가도 몬간 넘이 더 슬포질 것
같아서...쿠쿠쿡...쿡쿡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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