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먹는 밥 / 이진심
너무 바빠 서서 밥 먹으며 살았다
여물을 집어삼키는 가축처럼
온순하게 이 삶을 씹어 삼켰다
잘 씹히지 않는 밥을 먹을 때도 두 눈을 감았다
고작 서서 밥 먹으려고
하루를 일생처럼 견뎌 내었다
대항하지 않고 투정부리지 않고
찬물에 밥을 말아 씹지 않고 삼켰다
무릎을 끓으면
뒤에서 들소 떼가 땅을 뒤집으며 달려왔다
누가 나를 게으르게 먹고 있다
내 등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침이다
꿀꺽 삼키지 않고 천천히 목구멍으로 빨아들이는
보아 구렁이 같은 삶,
이 느린 식사에 나는 공손히 바쳐지고 있다
이 공손함 마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다
너무 바빠 서서 밥 먹으며 살았다
나는 잘못 한 것이 없다
너무 오래 견딘 잘못 밖에 나는 없다
- 시집 {맛있는 시집} (시선사 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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