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
문충성
돌담 구멍 막는 게 아니다
온갖 삶과 죽음이 구멍으로 통하나니
돌담 구멍 끼고 기어오를 때마다
너희들 새파랗게 웃을 테지
꿀을 모아야지 꿀벌들
달콤하게 콧노래 잉잉잉
노오랗게 꽃 피워내나니
비바람 불고 어지러이
눈보라 천지 가득 시커멓게
휘몰아치는 날
무자년 봄날은 피보라로
쓰러졌어도 제주 섬사람들
끈질기게 쌓아올린 돌담들
결코 쓰러지지 않게
올라간다 위로 옆으로
문충성 시집"허공"[문학과 지성사]에서
제주 돌담에 타오르는 송악의 넝쿨은 그렇게 삶의 끈질긴 힘으로 버티어 내고 있었나 보다 다 죽어가고 다 쓰러져 간 사람들의 얼굴같은 느낌을 받았다 역사란 송악 넝쿨 속에 감추어진 돌담처럼 진실한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돌담은 제주 사람들이 밭을 일구며 쌓아 올린 허공의 길이 아닌가 그 허공의 길에 송악 넝쿨이 뻗어 눈부라 휘돌아 쳐 간 날 기억하며 새로운 꽃 피워내고 결코 사람 삶의 눈과 같은 담 넘어 진실을 바라보도록 구멍을 막지 말라 말하고 있는 시인의 진실이 보인다 아마 송악 넝쿨이 팔 벌려 타오르도록 틈을 주고 그 틈에 우리들 생의 여백을 남기는 일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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