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서서 먹는 밥 / 이진심

자크라캉 2006. 4. 4. 18:52

서서 먹는 밥 / 이진심





너무 바빠 서서 밥 먹으며 살았다

여물을 집어삼키는 가축처럼

온순하게 이 삶을 씹어 삼켰다

잘 씹히지 않는 밥을 먹을 때도 두 눈을 감았다

고작 서서 밥 먹으려고

하루를 일생처럼 견뎌 내었다

대항하지 않고 투정부리지 않고

찬물에 밥을 말아 씹지 않고 삼켰다

무릎을 끓으면

뒤에서 들소 떼가 땅을 뒤집으며 달려왔다

누가 나를 게으르게 먹고 있다

내 등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침이다

꿀꺽 삼키지 않고 천천히 목구멍으로 빨아들이는

보아 구렁이 같은 삶,

이 느린 식사에 나는 공손히 바쳐지고 있다

이 공손함 마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다

너무 바빠 서서 밥 먹으며 살았다

나는 잘못 한 것이 없다

너무 오래 견딘 잘못 밖에 나는 없다


- 시집 {맛있는 시집} (시선사 2005/7)



 

 

 

        이진심 시인

1966년 인천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2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타버린 집》 포엠토피아, 2002 
《맛있는 시집》 시선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