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뒤란 / 문태준
산죽 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이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창작과비평, 2000/4)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그 뒷산과 연결된 뒤란엔 대나무가 파란 밭을 이루고 있다. 한 폭의 풍경화다.
그러데 산죽이 군데군데 잘라졌나 보다, 그 빈 공간으로 바람이 지나가자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난다. 장닭이 우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두꺼운 족보같이 완고하지만, 그 곳 어디에선가는 개혁의 바람이 분다. 그러면 동시대인은 그 개혁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뒷머리"를 긁는다. 마음이 소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개혁이란 것 자체가 소란하다고 소동을 피운다고 강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개혁의 편이어서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움직인다.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대세가 기울어져야 한다. 따라서 어두운 역사일수록 그 중심점하나는 마련해 놓는다. 어둠이 밖아 놓은 별 하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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