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작]-뿌리에게 / 나희덕 사진<금호이발관카페>님의 카페에서 뿌리에게 /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신춘문예당선작 2010.07.07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은아]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6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하기정]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름의 화법 / 하기정 구름은 여태 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어 형상은 당신 머릿속에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물방울이 아니야, 보다 가볍지 당신의 어깨를 적실 수도 당신의 입가를 핥을 수도 있지 그러니 나를 구름이라 이름 짓는 건 아주 치명적이지 네가..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6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황종권]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홍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를 재어 보았..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6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길상]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 / 이길상 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밤, 속옷을 갤 때마다 ..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6
[201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오르골 / 이슬 [2010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르골 / 이 슬 나무의 뿌리들이 태엽을 감고 있는 시간 누군가 상자뚜껑을 열듯 소리를 쏟아내는 나무들의 춤 소리가 멎을 때까지 흔들리는 일에 한창이다 울긋불긋 어지러운 현기증을 다 털어낸 자리 나뭇가지를 뛰어 다니며 놀던 수액들은 모두 바람이 된다 앞뒤..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6
[201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만섭] [201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직선의 방식 /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3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권지현]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3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강윤미]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골목의 각질 /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3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성태]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검은 구두 /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 신춘문예당선작 2010.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