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 심은섭
적요寂寥, 그 속에서 비우기 하고 있다
풀벌레 소리 숨죽인 나무틀에 앉아
알몸으로 몸을 푼다
덜 익은 유성 하나가 긴 한숨 삭히려고
별똥으로 떨어진다. 그러자
상쾌한 새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 간 뒤
머리 속에 휘파람 소리가 돋아나고
비워도 배 부른 항아리가 된다
차츰 뼈마디도 제자리를 찾아 가고
진땀이 멎고
헝클어진 실 타래가 풀어진다. 하지만
나무틀에 앉아 빈 접시로 남은 나에게
가슴바닥에 가라 앉아있던 물음표들이
불현듯 일어나
머리 속에 날 선 번뇌마저 비우라는
아우성 치는 소리를 잊어버린 채
싸리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하늘, 그 꼭지에서 새들도 비우기하고 있다
<`04년 심상 10월호>
심은섭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011-376-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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