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까레이스끼의 아리랑
심은섭
볼가강의 배 밑창보다 더 깊어야 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수척하기만 하다
1g의 어둠으로 170수의 밤을 짜낸
0시의 거리는 더 창백하다
하늘로 치솟아 폭포로 서 있는 빌딩 숲에
낮은 콧등을 감춰도 감춰지지 않는 까레이스끼
투명한 선지피가 고여 있는 눈동자엔
한반도 어느 산맥 기슭에 숨결이 잠든
갓 쓴 늙은이의 도포자락이 펄럭인다
목숨의 포로가 되어 눈밭에 풀씨로 남아
설원의 날카로운 지평선에 눈(目) 베이던 날
몇 개의 물방울은 혀끝에서 말라 버린다
허기진 이름들이 비문을 닦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휘어진 혀로 단군의 딸이 부른 아리랑을 불러도
까레이스끼의 입술에 무궁화 꽃은 피지 않는다
밤이 없는 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처럼
서늘한 이마 뉘일 그 땅은 멀기만 한데
낡은 수첩에 회귀의 습성을 잊은
연어 떼들의 무덤이 하나 둘씩 모여 든다
<심상>`04년 10월호
심은섭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011-376-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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