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백야, 까레이스끼의 아리랑

자크라캉 2006. 2. 21. 21:44

                               

 

 

                                야, 까레이스끼의 아리랑

 

                                                

                                               심은섭

 

 

볼가강의 배 밑창보다 더 깊어야 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수척하기만 하다

1g의 어둠으로 170수의 밤을 짜낸

0시의 거리는 더 창백하다

하늘로 치솟아 폭포로 서 있는 빌딩 숲에

낮은 콧등을 감춰도 감춰지지 않는 까레이스끼

투명한 선지피가 고여 있는 눈동자엔

한반도 어느 산맥 기슭에 숨결이 잠든

갓 쓴 늙은이의 도포자락이 펄럭인다

목숨의 포로가 되어 눈밭에 풀씨로 남아

설원의 날카로운 지평선에 눈(目) 베이던 날

몇 개의 물방울은 혀끝에서 말라 버린다

허기진 이름들이 비문을 닦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휘어진 혀로 단군의 딸이 부른 아리랑을 불러도

까레이스끼의 입술에 무궁화 꽃은 피지 않는다

밤이 없는 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처럼

서늘한 이마 뉘일 그 땅은 멀기만 한데

낡은 수첩에 회귀의 습성을 잊은

연어 떼들의 무덤이 하나 둘씩 모여 든다

 

 

<심상>`04년 10월호

 

 

 

 

심은섭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011-376-6812

shim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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