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 일러스트 = 잠산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박인환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기형도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김종삼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 김종삼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감상]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최 승 호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