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152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 일러스트 잠산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 일러스트 잠산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 석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이문재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