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100편 - 제10편] 사슴 /노천명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10편] 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1938년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6편] 서정주 '冬天(동천)'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6편] 冬天(동천)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감상]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5편] 김춘수 ‘꽃’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5편]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4편] 황동규 ‘즐거운 편지’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4편]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3편] 이성복 '남해 금산’'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3편]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2편] 김수영 ‘풀’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2편]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 - 제1편] 박두진 - '해' ▲ 일러스트= 잠산 [감상] 쥐띠 해가 밝았다.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킬 새해가 밝았다. 현대시가 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가밝았다. 대통령 당선자는 근심과 탄식의 소리가 멈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둠으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우리 시는 시대의 고통을 살라먹고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 일러스트 장산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