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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 심은섭

타워크레인 심은섭 마음속에 다져온 목관을 짜려고 세파에 썩지 않을 단단한 나무를 골랐다 그는 주춧돌을 놓고, 새들이 날아들라고 단청이 그려진 기둥을 세웠다 어깨동무를 한 네 개의 기둥은 황토벽과 손을 꼭 잡았다 가끔 세상 밖 무성한 바람소리를 수신하려고 넓은 창을 동쪽으로 냈다 북천별자리를 기억하는 굴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씌웠다 이름 없는 바람들이 목 축여 가라고 마당 한켠에 우물도 파놓았다 폐경이 되어도 꽃이 피는 꽃밭도 만들었다 헐거워진 생의 오후가 되어 목관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목관을 짜면서 발톱을 쓰지 않았다 어떤 음모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뭇결에 나무못이 남긴 상처가 훤히 보이는 목관이 완성되기까지 교만의 끝을 꺾지 못해 머리채를 휘감던 일도 있었다 젓가락 장단 맞추며 춤추는 날보다 전깃줄..

나의 자작시 2022.03.25

트로트2 -심은섭

트로트 2 심은섭 낮술에 취한 수탉이 명월을 불러들이는 일이거나 영상의 날씨에서 종족을 번식하지 못한 세균의 탄식인줄 알았으나 시장 뒷골목 달빛들이 깡소주로 생의 화상을 어루만지며 부르는 젓가락 장단이다 아니, 천 개의 산이 무너지는 소리이다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 처가 강을 건너지 말라는 애원이거나 사막의 지친 낙타가 모래톱을 씹는 소리인줄 알았으나 생쥐처럼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의 시퍼런 긴 칼 아래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 어느 민족들의 서릿발 치는 함성이다 궁핍의 성벽에 갇혀 있던 어머니의 빈 젖을 물고 허기와 싸우던 누이동생의 칭얼거림이거나 폐광에서 음모를 꿈꾸던 어둠들의 웃음소리로 알았으나 한우의 등뼈에서 쏟아져 나온 사골국물의 아우성이다 아니, 저음의 신들의 합창이다 -2022년 《스토리문학》 상반..

나의 자작시 2022.03.25

구멍가게 - 심은섭

구멍가게 심은섭 근엄한 신사의 담배파이프처럼 연기를 뿜어내던 공장굴뚝이 나무들의 저항으로 개기월식 중입니다 에스컬레이터가 밤낮으로 거리의 인적을 쓸어 담아내자 풍선껌은 풍선을 기억하지 못하고, 북어는 늙은 말의 눈빛으로 기둥에 매달려있습니다 새벽마다 북치고 나팔 불며 상한가 매출을 다짐하던 대형마트도 정신이 시계태엽처럼 풀어져 시든 꽃의 표정으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창문의 귀를 굳게 닫고 살던 도시의 빌딩들도 일제히 경련을 일으키며 주의 기도문을 외워보지만, 50년의 오랜 세파에 시달리며 얼굴 곳곳에 저승꽃이 피어나도 그는 비문 같은 외상장부에 적혀 있는 이름들의 영혼을 닦아주려고, 폐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신도 슬퍼할 만큼의 질긴 벽창호인 까닭에 그의 몸은 아홉 개의 피멍입니다 -출처 : ..

나의 자작시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