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939

회전목마 - 심은섭

회전목마 심은섭 허공이 나의 출생지이다 그러므로 네온사인이 발광하는 지상에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된다 나의 운명은 자본에 조련된 동전을 등에 업고 결정된 생의 궤적을 그려내는 일이다. 이것이 신이 내린 첫 계명이다 오래도록 변두리를 배회하며 사는 동안 두 눈은 퇴화 되었으나 무딘 감각으로 겨우 허공에 길을 낸다 그런 까닭에 운명의 축을 이탈할 수도 없었거니와 갈기를 날리며 광란하는 질주의 본능을 잊어버렸다 밤꽃이 발정하는 유월, 변압기가 구워낸 찌릿한 전류 한 덩어리로 식사를 한다 그것마저 배식이 중단된 날엔 공중에 정박해야 한다 오늘도 고독의 깃발을 나부끼게 만든 개똥벌레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다 - 2022년 『시의 독립을 선언하다』(한국현대시인100인+플러스), 창간100호 기념출판 - 2022년 『..

나의 자작시 2022.05.07

멍게- 심은섭 시인

멍게 심은섭 그는 갯바위에 앉아 전생의 원죄를 씻으려고 철야기도 중이다 입과 귀를 닫아버린 지도 오래다 파도소리의 소유권마저 거부하며 산다 그의 재산 목록엔 북방해달의 울음소리 한 접시와 거처하는 붉은 피낭 한 채 뿐이다 낙타의 검은 눈물을 가득 싣고 암달러시장을 표류하는 유조선과 온순한 허공을 깨우며 욕망의 원을 그리는 드론의 프로펠러를 잊으려는 듯, 두 눈은 퇴화했다 단순한 생의 궤적을 위해 신에게 두 다리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목숨을 연명할 만큼의 주먹밥이 서식할 1cm의 내장과 몸속 어둠을 몰아낼 달빛 몇 가닥과 한 뭉치의 고독을 묻을 섬 하나가 필요할 뿐, 하지만 육지의 불빛들은 여전히 어망의 지뢰를 내 발목아래에 묻고 있다 -출처 : 2022년 「시와 함께」(통권 10호) 봄호 심은섭 시인..

나의 자작시 2022.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