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심은섭
그는 갯바위에 앉아 전생의 원죄를 씻으려고 철야기도 중이다 입과 귀를 닫아버린 지도 오래다 파도소리의 소유권마저 거부하며 산다 그의 재산 목록엔 북방해달의 울음소리 한 접시와 거처하는 붉은 피낭 한 채 뿐이다
낙타의 검은 눈물을 가득 싣고 암달러시장을 표류하는 유조선과 온순한 허공을 깨우며 욕망의 원을 그리는 드론의 프로펠러를 잊으려는 듯, 두 눈은 퇴화했다 단순한 생의 궤적을 위해 신에게 두 다리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목숨을 연명할 만큼의 주먹밥이 서식할 1cm의 내장과 몸속 어둠을 몰아낼 달빛 몇 가닥과 한 뭉치의 고독을 묻을 섬 하나가 필요할 뿐, 하지만 육지의 불빛들은 여전히 어망의 지뢰를 내 발목아래에 묻고 있다
-출처 : 2022년 「시와 함께」(통권 10호) 봄호
심은섭 시인
《심은섭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평론집 :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상상력과 로컬시학』 외
∙(현)가톨리관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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