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수난기 심은섭 파꽃에 벌들이 모여 꿀파티를 하고 있다 만개한 사과나무도 수정을 서두르고 있다 재래시장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쑥갓의 입술엔 나비가 한창이다 모두가 텃밭에 모여 생의 천을 짜는 오후 007가방을 든 먹구름이 텃밭으로 떼지어 몰려와 푸른 지폐를 난사한다 그로부터 담장을 기어오르던 강낭콩이 회색빛 얼굴로 황급히 교회당으로 몸을 숨기고, 하늘을 찌를 듯한 굴뚝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연신 검은 교만을 뿜어낸다 그 교만을 마신 풍뎅이들은 입술에 돋아난 물집 몇 채를 들고 변두리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하늘에 더 이상 달이 뜨지 않았다 -출처 : 2022년 《심상》 8월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 2004년 『심상』으로 등단 -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