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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의 비망록 - 심은섭

빙어의 비망록 심은섭 참선하는 나의 선방은 얼음장 밑입니다 오랫동안 뜬 눈으로 수행을 해야만 몸속 등뼈가 훤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항아리 속 밀주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깊이를 발설하지 않는 폐광 속 어둠으로 살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휘어진 바깥세상의 등을 펴주려고 오직 지느러미로 목어만 두드리며 삽니다 금식의 규율을 지키려고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무젓가락을 한 번 사용해 본 적이 없어 그 젓가락이 몰락한 왕조의 황후가 사용하던 비녀로 기억될 뿐입니다 이곳 수행의 엄한 계율은 저렴한 눈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에 강물이 짤 리가 없으므로 비단잉어 혓바닥에 욕망의 이끼가 끼기도 하지만 달밤에 수달피가 던져놓은 어망과 악수를 거부한 지 오래되어 이미 나의 두 손..

나의 자작시 2022.09.08

바다로 가지 않는 강물은 없다 - 심은섭

바다로 가지 않는 강물은 없다 심은섭 강변에 사는 수양버드나무들은 강물이 허리에 권총을 숨기고 서부지역 금광을 찾아 떠도는 총잡이일 뿐이라며 빈정댔다 그러나 그믐달이 뜨면 산란을 위해 강의 하구를 찾아드는 연어 떼를 맞이하려고 밤낮 쉬지 않고 걸어갔던 것이다 바위 밑에 은신 중인 민물고기들은 강물이 푸른 문신이 새겨진 팔뚝을 보여주러 호프향이 가득한 나이트클럽으로 간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먼 바다에서 푸른 고독의 꽃이 온몸에 피어난 무인도를 예인하려고 황급히 달려간 것이다 바다가 강물의 무덤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바다로 가지 않는 강물은 없다 나침판도 없이 바다로 간다 파도는 안타까운 마음에 온몸으로 그를 만류해 보았지만 강물은 한 평생 꿈꿔왔던 수평을 유지하려고 낮은 곳을 찾아 흘렀던 것이다 -출처 : ..

나의 자작시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