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화투연구소장>님의 플래닛에서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비 온 뒤 말갛게 씻겨진 보도에서
한때는 껌이었던 것들이
검은 동그라미로 띄엄띄엄 길 끝까지 이어진 것을 본다
생애에서 수없이 맞닥뜨린, 그러나 삼킬 수 없어 뱉어버린
첫 만남의
첫 마음에서 단물이 빠진 추억들
첫 설렘이 시들해져버린 것들은 저런 모습으로
내 생의 길바닥에 봉합되어 있을지 모른다
점점으로 남겨진 검은 동그라미 하나씩을 들추면
가을잎 같은 사람의 미소가 여직 거기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너무 다급해서
차창의 풍경을 보내듯 흘려버린 상처들
비 맞으면 저리 깨끗하게 살아난다
씻겨지지 않은 것은 잊혀지지 않은 증거이다
어떤 흉터 속에 잠잠한 첫 두근거림 하나에 몸 대어
살아내느라 오래 전에 놓아버린,
건드리기만 하면 모두 그쪽으로 물결치던
섬모의 떨림을 회복하고 싶다
단물의 비밀을 흘리던
이른봄 양지 담 밑에서 돋던 연두 풀잎의 환희를
내 온몸에서 뾰죽뾰죽 돋아나게 하고 싶다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 정영선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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