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소녀의 껌 / 이기인

자크라캉 2006. 10. 16. 14:41


                                                  
사진<다음 신지식 Q&A>에서
        

 

 

        녀의 껌 / 이기인

 


 
        긴
        갯벌에서 주운 적이 있는
        조개껍질 같은 가슴으로 재봉틀 앞에 앉은 소녀
        땀에 젖네
        출렁이는 파도를 연주하였으므로 미역줄기처럼 가슴이 축축하네

        그 연주의 볼륨을 높이고 싶은 나른한 오후
        질겅질겅 씹던 껌의 반죽이 잘되어 통통한 자지가 되었네
        소녀의 입에서 말처럼 욕이 쉽게 튀어나오는 건
        그 자지를 너무 세게 물었기 때문에…… 그렇다네

        이제 박아줄까,
        둘둘 말린 붉은 천이 풀리고 그 바닷가 모래 알갱이들이 쏟아지네
        붉은 천으로 만든 옷의 안주머니는
        탁탁 털어서 입을 것
        주머니엔 못된 아이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을 줄…… 몰라


        연주의 중간 중간에 파도의 화음이 들리고, 전화를 받으러 소녀가 뛰어나가고

        일터를 자주 옮기는 똥파리 분대, 밥알을 남기고
        찢어진 빵봉지를 지나서
        언 생수통마냥 묵묵히 있던 소녀의 등에 보청기처럼 콩 달라붙네

        소녀의 땀냄새, 분냄새,
        고향 바닷가냄새가 나는 좋아…… 파리는, 지겹게 달라붙네

        너처럼 이쁘고 멋진 연주자를 본 적이 없구나
        흰 목덜미를 한번 잡아보고 싶은 늙은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와서
        긴 악보를 놓고가네

        슬픔은 슬픔으로 기워야 하는 이 연주의 곡명이 뭐지,
        악보를 보기 위해 소녀가 연주를 멈췄을 때
        파리는 이제 보청기를 뽑고, 창밖으로 멀리 날아가고

        입속의 껌은 더이상 발기하지 않았다네, 이 자지를 어디에 뱉을까

 

 

       시집 :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시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