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디어다음> 포토갤러리에서
푸른 신호등 / 박장호
정신질환의 나와 폐질환의 네가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다.
혼자라면 오징어나 씹었을 대사를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들썩이며 깔깔대고 웃는다.
공기 속을 떠다니는 우리들의 입김
한 달 만에 만난 두 사내가 왜 극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지
그 한증막 같은 습도를 사람들은 모른다.
배역을 받지 못한
배우처럼
나는 머리가 아프고 너는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다른 부위를 동시에 앓고 있다.
퇴화된 꼬리뼈를 악착같이 꽂고
갈 곳 없는 정오의 백수처럼
나는 너의 기관지에 매달려 웃고
너는 나의 정수리에 서서 웃는다.
통로 없는 스크린을
기어오르며
한 달 만에 만난 두 사내가 왜 극장에 처박혀 웃는지
웃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는 조금 아픈 것이다.
나는 너의 구멍 뚫린 폐가 아프고
너는 나의 좁다란 뇌신경이 아프다.
우리는 같은 부위를 함께 앓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온다.
상영이 끝나면 영화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사람들은 웃으며 술집을 찾아간다.
큰 병원으로
내몰린 응급 환자처럼
우리는 못 웃으며 입담배를 피운다.
창백한 너의 피부와 핏발선 나의 눈.
습기에 엉겨 붙은 푸른 담배
연기
아픈 사람은 술집도 못 간다
웹월간시 젊은시인들2 / [풍경 속으로 달린다] / 시와사상사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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