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불, 달린다 / 윤성학

자크라캉 2006. 9. 7. 11:25

 

          사진<삶과 여유 그리고 음악과 함께 멋진 여행을...>님의 플래닛에서

 

 

, 달린다 / 윤성학

 

며칠째 자리가 비어 있다

같이 일하는 여사원

그녀의 고향집

이번 산불로집과 비닐하우스를 잃었다

버섯과 고추를 알뜰히도 태웠다

 

밤에

불이 산에서 뛰어내려오는 것을

뻔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가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가랑이를 쭉쭉 벌리며

마구 쏟아져 내려와서는

지붕에 철퍼덕 엎어졌다가

금세 일어나서 또 뛰어가더라고 했다

노부모도 덩달아 뛰었다

 

며칠만에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머리칼에서

버섯 굽는 냄새가 잠시 피어올랐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불붙으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불덩이로 확 덮쳐버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정말로 미안했는지

꿈속에서 물동이를 날라주느라

자고 일어나니

어깨가 부서진 듯 아팠다

 

 

<당랑권 전성시대> 2006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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