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정이>님의 플래닛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램덤하우스 중앙 / 2006년
김경주 :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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