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어머니는 아직도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자크라캉 2006. 9. 2. 16:08

     

     

    

사진<유정이>님의 플래닛에서

 

     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램덤하우스 중앙 / 2006년 

 

    

    김경주 :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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