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장생포 우체국

자크라캉 2006. 7. 17. 11:50

 

 

사진<아침햇살 이나희>님의 플래닛에서

 

생포 우체국  / 손택수

 

 

지난밤 바다엔 폭풍주의보가 내렸었다

그 사나운 밤바다에서 등을 밝히고

누구에게 무슨 긴 펴지를 썼다는 말인지

배에서 내린 사내가 우체국으로 들어 온다

바다와 우체국 사이는 고작 몇미터가 될까 말까

사내를 따라 문을 힘껏 밀고 들어오는 갯내음,

고래회유해면 밖의 파도소리가

부풀어오른 봉투 속에서 두툼하게 만져진다

드센 파도가 아직 갑판을 때려대고 있다는 듯

봉두난발 흐트러진 저 글씨체,

속절없이 바다의 필체와 문법을 닮아 있다

저 글씨체만 보고도 성난 바다 기운을 점치고

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편지

바다의 아귀힘을 절반쯤 따라간 편지

뭍에 올랐던 파도소리 성큼성큼 멀어져간다

뿌-- 뱃고동소리에 깜짝 놀란 갈매기 한 마리

우표 속에서 마악 날개를 펴고 있다

 

 

시집 <묵련 전차> 2006년 창비

 

 

손택수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고, 경남대 국문학과와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등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호랑이 발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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