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러시아 보드카 / 서안나

자크라캉 2006. 7. 10. 21:01

 

 

                                            사진<누더기 보더>님의 블로그에서

 

시아 보드카   /   서안나


떠나간 A, 그녀가 가끔 보내오는 편지의 행간에는 러시아식 보드카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다. 편지의 내용이 경건할수록 밤이면 위축된다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한없이 무거워지는 밤들이 계속되었다. 떠나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A의 경박한 문장이 경전처럼 읽히는 밤이면 B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가끔 S가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P의 술에 절은 중얼거림 들이 편파적인 나의 꿈을 비난하곤 했다. 나의 꿈은 형편없이 수축되었다. 편지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슬퍼질 이유는 충분했다. 우리들은 가끔 소설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슬퍼지고 유쾌해지고 싶었다. 나의 과거는 우울한 기호들로 기록되어 졌다. 사건과 사건이 모여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사람들은 쉽게 사라졌다. 새벽이면 편지 속에서 나는 그녀들과 지루해지고 있었다. 엑스트라처럼 그녀들의 새벽을 맨 처음 산책하곤 했다. 언제나 모두가 위기였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아침이 되자 거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언제부턴가 절정부분의 J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어있다. 익명의 사건들이 기호들이 다시 결말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플롯 속의 그녀들」 전문

 



 

 

 

 

 

 

 

 

 

 

 

 

 

 

 

 

 

 

 

 

서안나

 

1965년 제주출생.

1990년 「문학과비평」겨울호 시부문 등단.

1991년 「제주한라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가작.

 현재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현대시」「다층」「시산맥」동인.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와「플롯속의 그녀들」가 있다.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비, 처음 날던 날  (0) 2006.07.17
초록 거미의 사랑  (0) 2006.07.12
너무 많은 날들이 흘렀다 / 서안나  (0) 2006.07.10
두 사직(社稷)에 대한 비탄 / 이진명  (0) 2006.07.08
저녁의노래 / 이상국  (0) 200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