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하나1004>님의 플래닛에서
저녁의 노래 / 이 상 국
나는 저녁이 좋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스름을 앞세우고
어둠은 갯가의 조수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딸네집 갔다오는 친정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벌레와 새들은 그 속의 어디론가 봄을 감추고
사람들도 뻣뻣하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하늘에는 별이 뜨고
아이들이 공을 튀기며 돌아오는
골목길 어디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안다
나는 날마다 저녁을 기다린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나 건달처럼 우쭐거리거나
쓸쓸함도 힘이 되므로
오늘도 나는 쓸데없이 거리의 불빛을 기웃 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이 상 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고, 1976년 『심상』에
「겨울추상화」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동해별곡』『내일로 가는 소』『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가 있다.
백석문학상 . 민족예술상 .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많은 날들이 흘렀다 / 서안나 (0) | 2006.07.10 |
---|---|
두 사직(社稷)에 대한 비탄 / 이진명 (0) | 2006.07.08 |
명퇴야, 명태야 (0) | 2006.06.27 |
책이 무거운 이유 / 맹문제 (0) | 2006.06.25 |
칙,칙, 압력솥 / 마경덕 (0) | 2006.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