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저녁의노래 / 이상국

자크라캉 2006. 7. 8. 17:39

 

 

사진<하나1004>님의 플래닛에서

 

 

녁의 노래  /  이 상 국

 

 

 

나는 저녁이 좋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스름을 앞세우고

어둠은 갯가의 조수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딸네집 갔다오는 친정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벌레와 새들은 그 속의 어디론가 봄을 감추고

사람들도 뻣뻣하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하늘에는 별이 뜨고

아이들이 공을 튀기며 돌아오는

골목길 어디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안다

나는 날마다 저녁을 기다린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나 건달처럼 우쭐거리거나

쓸쓸함도 힘이 되므로

오늘도 나는 쓸데없이 거리의 불빛을 기웃 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이 상 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고, 1976년 『심상』에

「겨울추상화」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동해별곡』『내일로 가는 소』『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가 있다.

백석문학상 . 민족예술상 .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