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공갈빵을 먹고 싶다 / 이영식

자크라캉 2006. 5. 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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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라일락>님의 블로그에서

을 먹고 싶다 /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시집공갈빵을 먹고 싶다(문학아카데미, 2002)



 

■ 해설 / 권두련


“반죽 같”이 끈끈하고 질척거리는 “삶의 거리 한 모퉁이”에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삶이 있다. 공갈이란 거짓을 말하는 속어로, 이 시에서는 인생을 부풀리고 과장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거짓인 인생에도 치열한 삶의 투쟁이 있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함으로 인해 그 거짓은 ‘속내’가 되고, ‘바람’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즉 기거 할 수 있는 내부가 된다. 치열함이 있기에 발효된 반죽의 힘을 제 걸로 만들 수 있고, 드디어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이 된다.


치열하다는 건 자신을 부풀리는 과정이지만 한 편으론 자신을 비우는 형이상학적 과정이다. 속내로 상징되는 욕심을 비우고, 바람의 부피인 겉모습을 지우고, 공기의 질량인 몸무게를 덜어내는 자기 단련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속 빈 것’을 무기처럼 ‘장전’하고 살아야 하니 슬픔이 “차지게 늘어붙”겠지만, 그 슬픔 한 덩이로 배를 불릴 수 있는 여자, 그녀가 부풀리는 건 결국 거짓이 아니고 꿈이다. 그녀는 지금은 빵을 굽고 있지만 뜨겁게 익어가는 건 그녀 자신이니, 그 꿈은 공갈빵처럼 부풀어 노릇노릇 익어 갈 것이다. 


한 가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공갈’이란 말에는 위협을 가해 강제적으로 이권을 빼앗는다는 뜻도 있는데, 변두리에 있는 작은 노점이지만 거기에도 요지를 차지하려는 암투가 있고, 이익의 일부를 상납 받으려는 동네 조폭들의 커넥션도 존재한다는 현실을 교묘하게 비꼬고 있다.


-『즐거운 시 읽기』(책나무출판사, 근간) 중에서


 


 

 

             이영식 시인

1952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공갈빵을 먹고 싶다』문학아카데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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