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

[스크랩] 아방가르스트 백남준

자크라캉 2006. 3. 20. 23:39

 

아방가르디스트’ - 백 남 준  

 (* 고 백남준을 추모하며 그의 아방가르드와 시 한편을 올린다.)

  

 

오남구

(시인, 문학평론가)


(1)

  ‘아방가르드’는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이다. 기성

관념이나 유파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이룩하려던 입체를 비롯해서 다다이즘,

초현실파 등의 혁신적인 예술 운동을 총칭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본질을 보면, 서

양의 2분법적 구조의 이원론을 깨뜨고 동의 합일(合一)된 일원론으로 이행

는 예술운동처럼 보인다. 단적인 예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이를 잘 보여준

다.그의 공연에서 백미는 역시 아방가르드이다. 혁신적이고 깊이 있는 연출을 하

그의 공연에는 해프닝이 있어 ‘연기자'와 '관객’이라는 종래의 2분법적 구조를

깨뜨리고 관객이 함께 공연한다.

  한 관객이 무대로 뛰어올라 와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노를 도끼로 부숴버리거나

백남준의 근엄하게 맨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버린다. 특히 그의 고국에

서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하면서 보여준 연출은 감동적이었다.  불편한 몸을 휠체

어에 의지하여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피아노 건반에 갑자기 물감을 칠하고 관객

나와 꽝하고 피아노를 넘어뜨린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그에게, 기자가

  “왜 피아노를 넘어뜨립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말한다.

  “심심해서…, 할 것이 없어서”

  백남준의 이 아방가르드는 현대예술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심심해서, 할 것이 없어서”라는 이 한마디는 그가 예술의 본질을 꿰뚫어 버리는

단말마인지도 모른다. 예술을  ‘심심해서’ 하는 원초적 유희본능의 행동으로 파악

하고 있으며, 기존 관념으로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깨뜨린다’는 해프닝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자부하고 있으면서,  ‘한국을 내

세우면 죽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것을 굳이 세계적

라고 촌스럽게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된 반어적 어법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판소리 한마당이 ‘광대’와 ‘청중’이 창(唱)을 하고 추임

하면서 한자리에 어울려 공연이 완성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해프닝’에는 거침

없이 관객이 튀어나와 그의 공연에 동참한다.  이것이 ‘관객과 연기자’ 라 는 

2분법을 깨뜨리는 그의 아방가르드인데,  그 원형으로 판소리 한마당이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2)


백남준의 연주




 

 

연주한다, 아니다, 백남준 그는

말없이 바이올린을 맨땅에 질질 끌고 간다.

기자는 이 순간 렌즈를 통해서

질질 끌고 가는 바이올린을 읽는다.

레지던트는 신경정신과의 창가에서

질질 끌고 가는 강아지를 읽는다.

나는 시를 쓰다가 눈을 감고서

질질 끌고 가는 바이올린 연주를 읽는다.

깨뜨린다, 활로 연주하는 정체된 방법

귀 기울이며 가는 백남준씨

‘참’인가, 이 연주 소리는?

그는 “이 소리도 아닙니다.” 한마디 하고

내 앞에서 훌쩍 사라졌다.


(시/ 오남구 작)



 

출처 : 디지털시-첫나비 아름다운 비행
글쓴이 : 글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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