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문
참회하는 말 사이로 졸졸 물소리가 끼어서 든다
천지의 덮고 실어주는 은혜… (졸졸졸)
아직 참에 돌아가는 길을… (졸졸졸)
오랫동안 고해에… (졸졸졸)
이전에 허물을… (졸졸졸),
도를 마음공부에 두어… (졸졸졸)
도장을 깨끗이 하고… (졸졸졸)
졸졸 물소리 따라 마음 흘러가면
환하게 보이는 물돌 사이
피라미 새끼들이 기를 쓰고 거슬러 온다
너럭바위 아래 아이들의 아랫도리가 흔들리고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맞은편의 산
두어 뼘 하늘이 열리고 첩첩 푸른 가슴의 살결
두 봉우리의 능선이 뭉클 안긴다.
*참회문; 동학에서 수도를 할 때 외는 참회문
시평/ 보여주기(showing)
오남구(본명 오진현)시인은‘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 2005. 4.)과 계간‘시향’을 통해 디지털문학선언을 하여 21세기 시론의 선두에 서서 ‘탈관념’‘접사와 염사’등의 화두를 던지면서 새로운 아방가르드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지난 6월 25일 배재회관에서 열린‘한국시문학아카데미’에서‘나의 시쓰기 과정’을 강연하면서“탈관념이란 한마디로 말해서‘살가죽이 벗겨진 시신이 한 손에 자신의 벗겨내진 살가죽을 들고 서있는 것처럼 관념이라는 표피를 탈피하여 직관한 신선한 참의 세계’를 일컬으며, 그러한 탈관념시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디지털문학’혹은‘디지털리즘문학’이라고 개념을 정의하고 그러한 탈관념적인 디지털문학의 원점을 이상의 시에서 찾고 있다.
그에 의하면 관념의 제로포인트(탈관념의 상태-본질의 상태)인 물체를 디지털카메라로 찍듯이 촬영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접사’란 물체가 반사시키는 빛이 카메라의 렌즈구멍으로 들어와서 생긴 영상을 촬영하는 기술이며,‘염사’는 일종의 선적(禪的) 현상으로서 내면세계의 잠재영상을 촬영하는 기술을 말한다.
위의 참회문(*동학의 참회문)은‘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묘사하여 보여주는’ 디지털적 시쓰기로서의 본인의 실험적 의식이 엿보인다. 인용시 9,10,11행은 그가 말하는 내면의식의 사진찍기로서 염사에 해당된다. 어느 때에 잠재의식인지는 몰라도‘졸졸’ 물소리에 의해 환기된 잠재의식을 따라가다가‘화들짝 놀라' 눈을 뜨면 현재의식으로 돌아와 1행과 13,14,15행은 현재의 상황을 접사로 나타내주고 있다. 관념을 배제하고 구체적, 사물적 이미지만으로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보여주기(show-ing)'하는 시로서 성공한 시이다.
그러나 그의 시론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J.C.랜섬이 구분한 사물시(事物詩)나, 모더니즘시에서 즉물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시 등과의 차별화를 위해 더 많은 이론적 실제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디지털시대, 유비쿼터스시대인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시대에 앞서가는 아방가르드 시론을 제기하고 직접 실험시를 창작하여 디지털리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오남구시인의 전위적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이혜선(계간문예 2005. 겨울호)
출처 : 디지털시-첫나비 아름다운 비행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