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예지에 실린 좋은 시를 찾아서
이승하
『시와정신』 2005년 봄호 김정원
「감자」
『전 망』 2005년
봄호 권경업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시와사람』 2005년 봄호 김옥희 「순신에
관한 소문」
『다 층』 2005년
봄호 원무현 「일용할 양식」
『생각과느낌』2005년
봄호 임희구 「1964」
『시와현장』 2005년
봄호 배한봉 「슬픈
노래」
『牛耳詩』 2005년
봄호 장태숙 「뱀」
대한민국만큼 문화의 중앙 집중이 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연극, 무용, 음악회, 전람회‥‥‥. 어느 예술 분야를 봐도 마찬가지다. 문학 또한 그렇다. 대다수 문예지가 서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지방 거주자의 불이익은 사실상 적지 않다. 우리네 문화 풍토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술자리 문화를 중요시하고 있고, 인맥이며
연고주의가 아직도 뿌리깊다. 그래서 지방에 거주하면 자연히 서울이나 서울 인근에 사는 사람에 비해 청탁의 기회,조명의 기회가 덜 주어진다. 지방
거주 문인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문학 행사에 자주 나오는 이유도 문화적 변방에 내몰려 있다는 소외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면‥‥‥나의 착각일까? 나 역시 지방에서 살았더라면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지방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거기 실린 작품 가운데 수작을 조명해 볼까 한다.
2005년 봄호를 11호로 낸 『시와정신』은
대전에서 발행되고 있다. 편집인 겸 주간이 김완하 시인으로,대전 한남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이다.‘우리 시대의 시정신’을 특집으로 삼은 기획도
무난하고 디자인도 깔끔한데, 특히 작품 수록에 있어 서울과 지방에 대한 안배가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나의 눈에 특별히 뜨인 시는 담양
한빛고등학교 교사라고 약력에 적혀 있는 김정원의 「감자」다.
산밭에 감자를 통째로
심고
일주일이 지나도 싹이 날 기미가 없었다
땅 속 감자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만큼
나의 죄를 질책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네가 아무렇게나 심은
탓이야’
지구 살갗의 푸른 음모들이 빽빽이 돋아날수록
나의 죄책감이 더욱
깊어가던 어느 날 저녁
구름이 궁시렁궁시렁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내뱉고
산 넘어
맑은 산을 성큼 데려온 아침
감자 싹이 빠끔히 황인종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비밀의 문을
구름은 단번에 열어버렸다
자연은 서두르지도 보채지도
않고
때 되면 붉은 감자에서는 붉은 꽃이,
흰 감자에서는 흰 꽃이 피고 질
뿐이었다
ㅡ「감자」전문
독자에 따라서 이 시의 소재며 주제가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사실 시어 선택과 내용 전개에 있어 별 새로운 구석이 없다. 뿐만 아니라‘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주제 이상을
찾기 어렵다고 타박을 한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같은 호에 실린,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허다한 시에 비해 이 작품에 눈길이
오래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충분히 느껴지는 시인의‘詩心’때문일 것이다. 시적 화자가 감자를 심었는데 싹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것이 제1연이다. 아무렇게나 심어서 싹이 안 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해 보기도 한다. 제2연에 가서 재미있는 표현들이
보인다. 녹음이 더욱 짙어져가는 계절을 "지구 살갗의 푸른 음모들이 빽빽이 돋아날수록"이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지만 구름의 의인화는 더욱
재미있다. 간밤에 비가 내렸던가 보다. 구름이 "산 넘어 맑은 산을 성큼 데려온 아침"에, 마침내 "감자 싹이 빠끔히 황인종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시인은 이 대수로울 것 하나 없는 사건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연은 서두르지도 보채지도 않는다는 것을. 콩
심은 데는 응당 콩이 나고 팥 심은 데는 반드시 팥이 난다는 사실에서 자연의 이법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우리 인간은 매사 서두르고 보채는데,
자연은 정말 자연스럽게 때 되면 열매 맺고 때 되면 꽃을 피운다. 감자를 통해 그것을 읽어낸 시인의 마음은 높이 사고 싶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찌 하랴. 잔잔한 울림이 있는 이런 시를 좀더 참신한 언어 감각을 갖고 쓴다면 좋은 텐데‥‥‥.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에서 내고 있는 『전망』은 2005년 봄호로 어언
22호째를 맞이하였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서 초창기부터 '신생의 현장을 찾아서'를 특집으로 꾸미고 있는 이 시 전문
계간지는 내용이 보통 이상으로 알차다. 부산지역 문학의 강세를 증명하는 좋은 문예지인데, 편집인은 이규열
시인이다.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이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
ㅡ권경업,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전문
권경업이란 이름은 내게 생소한데, 약력을 보니 월간『산과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인의 2권 시집 제목도 내게는 낯설다. 일단 시의 제목이 조금은 특이하다.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으면 사람들은 지나다 보면서 "눈부셔라, 눈부셔라" 하겠지만 거미 입장에서는 거미줄이 다 드러나
있어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이감도 걸리지 않는다. 제2연에 가서 거미의 입장은 시인의 처지가 된다. "안개 낀 삶의
막막함"이 느껴질 때 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시일 테지만, 시가 언제 재화가 되어 우리에게 온 적이 있었던가. 시 쓰는 행위를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는다고 표현한 것은 절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본들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 거미줄 잘못친
거미나 시인의 길로 잘못(?) 들어선 사람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인식이 낳은 시, 바로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이다. 이 시인의 다른 2편의 시 「돌부처」(2연 5행)와 「흰 눈이 땅으로 내리는 것은」(3연
5행)도 짧은 만큼 불필요하게 들어가 있는 시행과 시어가 하나도 없는 꽉 짜인 완성품이다. 권경업 시인에게 따로 주문하고 싶은 것은 시가 너무
단순 소박하니 인식의 넓이와 주제의 깊이도 아울러 추구했으면 한다는 것. 일목요연과 촌철살인이 언제나 좋은 덕목은
아니다.
광주에서 발간되는 시전문 계간지 『시와사람』도 어느덧 36호를 냈다. 연륜이 쌓여가면서 더더욱 알찬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데, 현재의 편집주간은 이은봉 시인이고 발행인 겸 편집인은 강경호 시인이다. 이번 봄호의 특집은 '한국
현대시와 판타지'로서, 문흥술·강웅식·김행숙 세 사람의 평문이 읽을 만하다. 작년도 『시와반시』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옥희의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부터 그를 애인이라 부르겠다 그러니까 열두 척 남은 배를
보고 상심할 때부터 마음을 뺏긴 것이다 정직하게 말을 하면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상상을
하기 시작하며 애인이 되었다 배 안에 내
물건들 대신 그의 물건을 채워 넣고 바닷가 주변을 살금살금
돌아
다닌다 새어나오는 불빛을 멀리서 바라보며 큰 칼 옆에 찬 그가 동
굴 같은 입을 벌려
신음하는 것을 듣는다 냉정하게 따져 그가 거기
있으면 나는 여기 있고 그가 여기 있으면 나는 거기 있다 그를
만
나기 위해서는 거북선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거북선을 만드는 건
늘 가슴 뛰는 일이다
역사에 남을 전쟁 중에도 거북선 밑창으로 들
어갈 수 있었는데 다른 병사의 손을 잡고 몰래 들어가면 그가 미리
와서 누워 있는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절대 아무에게도 알
리지
말라며
ㅡ「순신에 관한 소문」전문
이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텔레비전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을 보고서? 아니면 김훈의 『칼의 노래』나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서? 그런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이순신에 관한 몇 가지 정보(마지막 남은 배른 고작 열두 척이었다. 거북선을 만들었다.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숨을 거두면서
병사들의 사기 저하를 걱정하여 자신의 사망 소식을 전투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아달라고 한 것 등)를
갖고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를 완성해 나간다. 시인은 이순신을 '성웅 이순신'으로 추앙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애인
순신'으로 간주, 제멋대로 상상을 해본다. "이제부터 그를 애인으로 부르겠다"고 일갈하면서 시가 시작되는데, 애인으로 삼게 된 연유는 "열두 척
남은 배를 보고 상심할 때부터"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 속의 인물(텔레비전 드라마 혹은 소설 속의 인물이어도 마찬가지다)을
애인으로 설정한 것부터가 상당히 기발한 착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시는 갈수록 점입가경이 된다. 화자가 다른 병사의 손을 잡고 거북선
밑창으로 몰래 들어갔다고 하니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운 것이다. 그런데 애인 순신은 미리 와서 거북선 밑창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절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로 끝나는 이 시는 어찌 보면 장난 같기도 하고 망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이든 드라마든 무엇인가를 본 간접체험을 갖고 직접체험을 한 것인 양 둘러치는 시인의 능청스러움이 이 시를 살리고 있다. 이런 식의 상상력도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상상'이다. 발상의 참신함이 돋보이지만 재치 있는 상상에만 시가 머물면 농담
이상이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층』봄호는 창간 6주년 특집호이다. 제주도 시인의 열망을 담아서
내고 있는 『다층』25호, 6주년 특집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기획특집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계보'는
김수영·김춘수·서정주에 대한 평론을 모은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자 특집 등 주간 변종태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면면을 채우고
있다. 상당량의 시작품 가운데 강한 색채를 지닌 시가 있어 제법 길지만 전문을 적어본다.
하반신이 잘려나가고
없는데도 살아 움직이는 개미를 본다
간혹, 빵 부스러기를 나르다 말고 멈칫거린다
풀밭에
묻힌 하반신이 기억나는 것일까
상반신뿐인 자신을 깨닫고 고통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
이내
노동에 몰입!
얼마나 약효 뛰어난 진통젠가
일용할
양식이란.
개미다리에 올챙이배를 한 사내가
열중하던 일을 놓고 창밖을
응시한다
담쟁이넝쿨이 파릇파릇 기어오르고 있다
스무 살 그 싱싱한 시절이 몸을 휘감는가
보다
그러나 돌아가려야 갈 수 없는 삼십 년 저 건너편
문득, 소변보고는 몇 시간째
올리지 않은 지퍼를 발견하곤
뛰어내리고 싶은 것도 잠시
이내 노동에
몰입!
얼마나 약효 뛰어난 각성젠가
일용할 양식이란.
ㅡ「일용할 양식」전문
개미는 하반신이 잘려나가고도 살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원무현 시인은 하반신이
잘려나간 개미가 빵 부스러기를 나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나 보다. "상반신뿐인 자신을 깨닫고 고통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이내 노동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있어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지'란 말을 쓰고 있는 것일 게다. 먹어야 살 수 있고, 먹고 죽은 놈이 때깔도 좋다고 한다. 먹어야 양반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시의 후반 연에는 50대의 남자가 등장한다. 열중하던 일이 어떤 일인지, "뛰어내리고 싶은 것"은 또 무엇인지
설명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성치 못한 몸의 사내임엔 틀림없고, 그 사내는 소변보고 몇 시간째 올리지 않은 지퍼를 발견하고 수치심과 참담함을
느낀 것도 잠시, 금방 하던 일에 몰두해야 한다. 돈을 벌어 일용할 양식을 사야 하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란 이렇게 처절한 것이다. 제2연의 모호한 부분에 좀더 구체성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은 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부기한다.
대구에서 발간하고 있는 종합 계간지『생각과느낌』도 어언
33호를 내고 있다. 김춘수 시인 추모 특집호를 낸 봄호를 보니 여간 충실하지 않다. 지역적 특색을 내세운 것이 오히려 이
문예지의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희구의 「1964」란 시에 주목한다.
그해
겨울은 암담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 뱃속에 있었으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나
손끝 하나 댈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눈보라가
쳤다
어머니 뱃살로 느껴지는 쌩쌩한 바람들이
날마다 귓전을 울렸다
그 무렵 아버지는 대패질을 하면서
다시는 건너오지 못할 먼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암세포처럼
독한 약풀에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싹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할 생을
생살로 터득하면서
죽은
듯이 입 꼭 다물고 눈 꼭 감고
한없는 날들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머니 그렇게 나를
지우고 지우며 품었다
그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고 저물어 아픈 것들이 아득아득해지면
ㅡ「1964」전문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시종일관 태아다. 어머니 뱃속에 있던 1964년 겨울을, 어떻게 회상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다만 어머니로부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리라. 실재했던 상황이 아니라 상상력을 맘껏 펼쳐 하는 이야기일지라도 기구한
사연임에 틀림없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 뱃속에 있었으므로/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나/손끝 하나 댈 수가 없었다"는 두 번째
문장이 독자를 확 끌어당긴다. 그 무렵 시적 화자의 아버지는 암에 걸려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기를 지우기로 결심했던 것이리라. 그 시절에는 낙태수술을 일반인에게 아직 행하지 않았던 듯. 혹은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화자의 어머니는 독한 약풀로 아기를
지우기로 하고 삼켰으나 화자(아기)는 자궁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할
생을/생살로 터득하면서/죽은 듯이 입 꼭 다물고 눈 꼭 감고/한 없는 날들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 그렇게 나를 지우고 지우며 품었다"가 가슴을 때린다.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런 기구한 출생이 어디
한두 건이겠는가. 임희구 자신이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인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인들 실체험의 여부가 무어 그리 중요한 것이랴.
이 세상에는 축복받지 못한 출생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고, 시인은 그 한 예를 담담히 들려주고 있다. 그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아픈 것들이
아득아득해져서 화자는 고고의 울음을 터뜨리며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리라. 제목 '1964'는 "1965년 서울
출생. 2003년『생각
과느낌』으로 등단, 같은 해 전태일 문학상 받음. 시집 『걸레와 찬밥』"이라는 약력이 있기에 이 시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내용면은 그렇다 치고, 시종일관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긴장감이 이 시의 매력이다. 임 시인의 후속 작품이
기대된다.
경남 통영에서도 시전문 계간지가 나오고 있다. 이번 봄호로 여덟 권째를 내는『시와 현장』은 볼륨에
있어서나(196쪽), 책 구성에 있어서나 필자 면면에 있어서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하지만 최계락 동시 연구(김영진), 작고 시인 장하보의
31편 시, 해외 연구로 「월트 휘트먼의 존재적 자아」(김혜영) 등은 그 나름의 특장점이 있다. 수록시 가운데 배한봉의 「슬픈 노래」가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뚝, 뚝, 그
소리는 새벽까지 내 잠을 두드렸고
나는 어서 잠들기만을 원했습니다.
물방울
소리를 견디지 못한 잠은 바늘처럼 뾰족해졌고
나는 비닐로 수도의 입을
묶어버렸지요
그러나 혼몽한 가운데서도 내가 물을 따라간 것인지
물이 내 의식
속으로 스며든 것인지
나중에는 사방이 물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흐르겠다는
물을 막는다고 해서 멈추겠어요?
잘못은 내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물의 괴로움을 탓했던 것이
내 괴로움의 원인이었지요.
울겠다는 새의 부리를
봉해버린 것처럼.
ㅡ「슬픈 노래」전문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나는 물방울 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밤, 화자는 비닐로 수도의 입을 묶어버림으로써 소리를 죽인다. 잠이 들기는 했지만 꿈결에 사방이 물소리로 가득 차 오히려 잠을
설치고, 화자는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흐르겠다는 물을 막는다고 해서 멈춰지겠느냐고. 이 시를 확대 해석해본다. 우리는 댐을 만들어 수량을
조절하고 농수를 공급하고 전기를 일으킨다.댐을 만든다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물길을 죽이는 것이다. 산업화니 경제발전이니 국민총생산 증가니 하는
것도 따져보면 공장을 지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공장은 당연히 이 나라 산천을 황폐케 한다. 물길을 막으면 물이 죽고, 물이
죽으면 철새가 오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물의 괴로움을 아는 이가 바로 『우포늪 왁새』와 『흑조』의 시인 배한봉이다. 상투성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생태환경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니 무척 신선한 느낌을 준다.
『우이시』는 지방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는 아니지만 아웃사이더임이 분명하므로 다뤄보고자 한다. 우이동에 사는 몇 명 시인이 모여 결성한 우이시낭송회가 내던 동인지를 시단
인구 전체에게 개방하여 내는 월간 『우이시』가 어느새 202호재를 맞이했다. 202호 지령은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책의 외양과 속내가 보여주는 보수적 색채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꾸준함과 한결같음 앞에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장태숙의 「뱀」을 수작으로 뽑고 싶다.
나는
너의 뇌
세포에 똬리 틀고 앉아
네 사유들을 씹어 먹으며 산다
내
언어는 붉은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물결치듯 유연한 몸뚱이와 네 심장 뒤흔드는
선명한
피부무늬
집요하게 긴 혓바닥으로 휘감는 속삭임과
번뜩이는 내 노란 눈빛에
진저리치면서도
매혹의 칼날에 항복해 버린 순간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너는 잘못
살았느냐
ㅡ「뱀」제 1, 2연
구약성경에 나오는 뱀의
이미지를 차용해 왔다. 그런데 도입부 제1연은 분명히 역설적 상상이다. 화자는 어찌하여 너의 뇌 세포에 똬리 틀고 앉아, 네 사유를 씹어 먹으며
산다고 한 것일까. 제2연으로 접어들면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곧 뱀이 된다. 내 언어는 미사여구였지만 사실은 감언이설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을
호도하고 거짓을 옹호했으니, "너는 잘못 살았느냐"는 "나는 잘못 살아왔다"를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내 용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귀를 닫아걸고
수만 개의 눈을
깨워 팽팽한 심지 곧추세웠어야 했다
아직 혈관 속 독기 품고 은밀히 숨어
있는
어느 순간 매운 가시처럼 일어서
날카로운 이빨로 네 심장을
질러댈
나를 기억하라
그 숨막히는 지옥을 시간들
거부해야
한다
점점 희미해지는 너의 사유 위로 안개 같은 입김
다가서면
내 머리 솟아오르기 전에
위태롭게 치켜 오르기
전에
방출해야 한다 나를
ㅡ「뱀」제 3,
5연
사람이란 나약한 존재여서 자기를 속이며 사는 경우가 많다. 주관대로 살지 않고 눈치보며 살고, 소신 있게
살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며 사는 경우도 많다. 내가 남을 감언이설로 속이기도 하지만 남도 나를 뱀의 혀로 속이며 산다. 제3연과 4연에서 시인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있다. 그 표현이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마지막 연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대여, 당신도 또한
거부해야 한다. 그대 사유 위로 뱀의 입으로 내뿜는 안개 같은 입김을 내가 내뿜는다면 그대는 나를 받아들이지 말고 방출해야 한다' 고. 말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말이 (불운의) 씨가 되기도 한다. 뱀의 혀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나를 스스로
꾸짖고 있으니, 이 시는 일종의 자경록이다.
이상 6권 지방 문예지와 『우이시』에 실린 7편의 시에 대한
감상을 글로 써보았다. 비록 이번에 다루지는 못했지만 대구의 『시와반시』, 부산의『시와사상』, 대전의『애지』와『문학마당』, 강릉의『시와세계』등
지방 문예지들의 대약진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편집진의 의욕이 기획특집에 넘쳐나고, 시와 평문들 수준 또한 중앙지에 못지 않다. 이는
지방시인들에게 자극을 주고 기운을 불어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문학의 지방 분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문예지 중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문예지가 없지 않은데, 바짝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들 문예지의 함량에 금방 못 미치게 될
것이다.
ㅡ『문학나무』2005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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