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텃밭의 수난기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8. 4. 17:17

 

 

   텃밭의 수난기

 

 

    심은섭

 

 

 

   파꽃에 벌들이 모여 꿀파티를 하고 있다 만개한 사과나무도 수정을 서두르고 있다 재래시장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 쑥갓의 입술엔 나비가 한창이다

 

   모두가 텃밭에 모여 생의 천을 짜는 오후

 

   007가방을 든 먹구름이 텃밭으로 떼지어 몰려와 푸른 지폐를 난사한다 그로부터 담장을 기어오르던 강낭콩이 회색빛 얼굴로 황급히 교회당으로 몸을 숨기고,

 

   하늘을 찌를 듯한 굴뚝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연신 검은 교만을 뿜어낸다 그 교만을 마신 풍뎅이들은 입술에 돋아난 물집 몇 채를 들고 변두리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하늘에 더 이상 달이 뜨지 않았다

 

 

  -출처 : 2022년 《심상》 8월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 2004 심상으로 등단

- 200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 200815,18문학상수상

- 202222회 박인환문학상수상

 

 

 

[시작노트

 

   성하의 계절이다. 연일 붉은 수은주가 상한가를 친다. 사람들은 용광로 같은 삼복더위를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내야 한다. 이 여름을 통과하지 못하면 가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무더위의 고통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 4월의 따뜻함을 깨달고, 8월의 뜨거움 속에서 10월의 서늘함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한 계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8월의 뜨거움 속에서 몸을 익혀야 그 익은 몸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

 

   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 또 있다. 시는 고독이다. 시의 고독은 시인의 고독이다. 시는 깊은 상처의 고독이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가 시작(詩作)이다. 시를 쓰지 않는 것은 시의 고독을 방관하는 일이며, 시인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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