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100년사
심은섭
그는 청호동으로 건너오는 갯배가 잘 보이는
망향탑 한 귀퉁이 공터에 자리잡고 산다
홀로 바다를 지키던 갈매기섬을 흔들어놓고
해풍도 가끔 다녀간다
그는 밤새도록 외등을 끄지 않는다
긴 목을 더 길게 내밀고 북쪽의 흰 그림자를
한 번만이라도 보려는 백 년의 기다림,
상봉의 그 날까지 버티려고
온몸에 이정표처럼 살이 찐 잎을 달고 산다
무사히 찾아오라고
혹은, 그 잎을 보고 찾아올 수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의심으로
홍시의 깃발을 흔들며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눈꽃이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계절이
수십 번 반복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갯배가 굳은 표정으로 부두에 닿았다
한 양동이의 그리움이며, 한 상자의
절망과 한 됫박의 슬픔만 타고 있을 뿐,
100년을 기다리던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 동안 땀을 식힌 마지막 갯배는
저녁 어둠을 가득 싣고 북쪽으로 향한다
부두엔 고무줄보다 질긴 그리움만 채워진다
그가 설해목의 고통으로 살아온 100년,
올해는 심한 기침으로 홍시 한 알 열지 못했다
-출처 : 2022년 《심상》 8월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 2004년 『심상』으로 등단
-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 2008년 「제1회 5,18문학상」 수상
- 2022년 「제22회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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