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감나무 100년사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8. 4. 17:13

 

 

 

나무 100년사

 

 

심은섭

 

 

 

그는 청호동으로 건너오는 갯배가 잘 보이는

망향탑 한 귀퉁이 공터에 자리잡고 산다

 

홀로 바다를 지키던 갈매기섬을 흔들어놓고

해풍도 가끔 다녀간다

그는 밤새도록 외등을 끄지 않는다

긴 목을 더 길게 내밀고 북쪽의 흰 그림자를

한 번만이라도 보려는 백 년의 기다림,

상봉의 그 날까지 버티려고

온몸에 이정표처럼 살이 찐 잎을 달고 산다

무사히 찾아오라고

혹은, 그 잎을 보고 찾아올 수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의심으로

홍시의 깃발을 흔들며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눈꽃이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계절이

수십 번 반복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갯배가 굳은 표정으로 부두에 닿았다

한 양동이의 그리움이며, 한 상자의

절망과 한 됫박의 슬픔만 타고 있을 뿐,

100년을 기다리던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 동안 땀을 식힌 마지막 갯배는

저녁 어둠을 가득 싣고 북쪽으로 향한다

부두엔 고무줄보다 질긴 그리움만 채워진다

 

그가 설해목의 고통으로 살아온 100,

올해는 심한 기침으로 홍시 한 알 열지 못했다

 

 

 

-출처 : 2022년 《심상》 8월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 2004 심상으로 등단

- 200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 200815,18문학상수상

- 202222회 박인환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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