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에밀레종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7. 1. 15:04

 

 

밀레종

 

 

심은섭

 

 

 

아파야 한다 더 아파야 한다 네가 아파 울 때

해산날이 다가오는

말리꽃이 나뭇가지에서 몸을 풀 수가 있다

아니다

식사를 거르며 공전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겨우 땀을 식힐 수가 있다

 

아파야 한다 아파서 죽도록 피울음을 토할 때

천 년 동안 잠들었던 내가

정정한 가을연못처럼 깨어날 수가 있다

아니다

맹금류들의 발톱이 어느 때보다 청빈해지고

길고양의 빈 내장에 화색이 돌 거다

 

아파야 한다 더 아파야 한다 네가 한없이 울면

태풍으로 실명한 일개미에게

컵라면이 익어가는 저녁이 다가올 수 있다

아니다

종착역을 잊어버린 그믐달이

새벽마다 어둠 속에서도 열반에 들 수 있다

 

 

-2022년 《시》 7월호에 게재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 2004 심상으로 등단

- 200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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