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김혜경-2012년 <시인정신> 여름호 시인문학상 당선작 - ‘고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

자크라캉 2012. 7. 3. 10:08

사진<평신도 봉화대>님의 카페에서 캡쳐

 

 

 

 

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 / 김혜경

 

                                                                       


이 죽일 놈의 ‘고독’, 누가 한 접시 안 사실래요


밤,

고독이 나를 습격한다 사금파리 눈빛이다 살 밖의 환희, 라디오에서 음악이 걸어 나온다 악수를 건넨다 한줌의 고독이 죽어간다 핵분열한다 바람이 바람을 살해하는 오후, 그들은 박쥐떼 발톱으로 몰려온다 고독에 내가 죽어가고 그리움 몇 장에 또내가 죽어간다 알뜰히 “내 몸의 구멍을 내고, 내 뼈를 전부 세고 있다”* 물렁해진 정신 단단한 고독, 어둠이 유리알이다 고독이 표독스럽게 부활하는 밤, 새벽이다 이 죽일 놈의 ‘고독’, 누가 한 접시 안 사실래요


한 접시 ‘그리움’,  보너스로 드릴게요

 

 

 

*가톨릭 기도 일부 차용

 

 

 

 

쁜 여자 / 김혜경


                                                                      

별빛 한 잔 건네며 키스를 강요하는 여자, 봄, 한 알 먹고도 울렁증에 시달린다고 앙큼떠는 여자, 피자가게에 보름달을 주문하는 여자, 톱날의 아우성이 베토벤 월광곡이라고 우기는 여자, 열네 살의 초경을 시샘하는 쉰 살의 여자, 그런 여자


달빛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여자, 등이 굽어진 새우의 사연 팔아 졸부가 된 여자, 부처님의 허릴 안고 밸리댄스를 요구하는 여자, 담장을 기웃거리는 옆집 사과나무에 윙크하는 여자, 성황당 바람소리가 성자의 발소리라고 우기는 여자, 또 그런여자


사막의 모래가 각설탕이라고 우기는 여자, 소크라테스를 카지노로 유혹하는 여자, 탈무드가 나의 자서전이라고 입에 거품문 여자, 한파주의보 내린 날 에어컨을 켜는 여자, 4월의 부푼 바다가 임신 중이라고 위증하는 여자, 또 그런그런 여자


 

 

 

 

 

  비키니를 걸친 여자 / 김혜경


                                                                                                                          

    

   새벽마다 낡은 비키니를 걸친다 그 여자,

   수은주가 바닥의 깊이를 모르고 곤두박질하는 십이월, 재래시장으로

   바캉스를 간다


   어둠이 두터워져도 시장에 갇혀있는 그 여자, 갈치 등뼈 후려치는 팔

   에서 비린내가 술렁거린다 식도를 넘는 찬밥 덩어리, 그녀는 문풍지

   소리를 낸다 오징어가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는 오후, 그녀는 리어커

   에 실려 침몰하는 시간이 된다 그녀의 몸을 굽던 메밀전이 지폐를 기

   다린다 닭발 손금 봐주는 그 여자, 빙판 위를 걷는 고니의 맨발이다

   삐걱거리는 무릎에 물파스를 덧칠하는,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허

   무의 원을 그리는 구리반지다


  지금, 그 가슴에

  반짝이는 팔월의 태양 한 잎 달고  바캉스를 꿈꾸는

  그 여자

 

 

 


/ 김혜경

 


만리장성이 떼 지어 몰려온다 스크럼을 짜고

살모사 눈빛으로


신들린 무녀의 눈빛인 만리장성, 옥상에 둘러 앉아 검은 음모를 꿈꾸며 지하  주차장 CCTV에도 출현 한다 그들은 타클라마칸사막의 테러리스트, 도시를 점령하려는 시위대, 도심은 콜록거리며 링거를 들이키고 있다 빌딩 아래로 뛰어 내려도 ‘자살’이 ‘살자’가 되는 그들, 한반도 입속에 던져 놓은 정치망, 그 그물도 통과 한다 황톳빛 반란이다 그들에게 저항하던 악어는 한줌의 재가 된다 도시의 어깨는 균열이 가고, 눈이 충혈 된 군중들


두 손을 뻗어 단군과 교신 중이다

그들은 여전히 뱀눈이다

 

 

 

 


  랩소디 보헤미안 / 김혜경



      내 동굴 속으로 유목민의 피가 흐르면 좋겠어

      그랜드캐년의 구름부족이고

      싶어, 나는


      라스베가스에 저당된 창백한 지갑이고 싶어

      미확인 된 UFO가 되고

      베토벤의 ‘운명’ 으로 죽은 자를 유혹하고 싶어

      하이힐 신고 건반 위를 뛰는 물고기가 되고

      싶어, 누구도 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수 없어

      이과수 폭포보다 더 마른 천둥소리를 내고

      싶어, 바다에 젖은 태양이 되고 싶어

      빨간 손톱으로 모닝글로리 호수를 파고

      음속으로 달려가 구름 마시고

      낡은 징의 말발굽이 되고 싶어

      노을이 오면 피리소리 내는 목울대 되고

      싶어, 아직은 요실금에 걸린 냉장고는 되기 싫어

      난장이의 굽높은 신발이 되고 싶어

      태풍을 끌고 가는 헬륨풍선,

      타이머에 노예가 된 압력밥솥에서 벗어나고

      물렁한 암벽이 되고

      허공의 머리채를 흔드는 알전구가 되고 싶어


      0시에 창문을 빠져 나간 청동시계바늘 소리이고

      싶어, 나는

      발목 없는 탱고,

 

 

 

 

      기차는 홀로 떠난다 / 김혜경


                                         


      싸늘한 몸으로 한 ‘운명’이 개찰구로 들어선다

      철문처럼 굳게 닫힌 눈동자,

      푸른 고통들이 ‘운명’의 치맛자락에 서식한다

      온 몸이 주름진 커튼이었던 그는,

      달빛으로 허기를 채우는 가을밤이기도 했다

      체온이 빙점인 손

      낡은 기억들이 우글거리는 기차표가 들려 있다   

 

     ―――――――――――――― 

 

       * 장의자 (여, 88세)

       * 1등급 와불 상태

       * 뇌졸중으로 오른쪽 불안

       * 튜브급식

       * 국적불명의 빨간고독

       * 욕망이 빠져나간 욕창

 

     ―――――――――――――― 

      인공호흡기가 내려놓은 싸늘한 손목

      검은 바람이 타고 온 완행열차에 몸을 싣는다

      홀로 떠나는 목관,

      저녁노을이 유리창에서 눈시울을 붉힌다

      눈물에 젖은 저녁이 푯대의 깃발처럼 펄럭인다

      둥글게 앉아 있는 망각의 강, 할미꽃들


      그 역으로 가는 기차표, 납빛얼굴의 한 여자가

      예약 중이다


 

 

출처: 2012년 시인정신 여름호

 

 

[심사평]

 

참신한 발상과 기발한 묘사

 

 

김혜경의 

고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 외6편


오늘날 현대시는 이념이나 사상을 초월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오늘 날 동서양 사상을 넘나드는 젊은이들이 특별히 기피하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이 모든 이념과 사상을 수용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오늘의 세대는 이 개방화시대의 성숙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특히 문학은 광범한 사상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인간학인 동시에 예술이기 때문에 음식 가리듯이 가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따라서 요즘 현대시는 체험의 서술로 또는 익살스런 표현으로 가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때문에 문학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려지고 있음을 느낀다. 고통에서 쾌락(즐거움)쪽으로 비중이 실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오늘날은 작품에서 비극을 맛보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암시인 듯하다.


시작의 초보단계에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런 경험이 실제생활과 연계되지 않으면 공소한 추상적 공상에 떨어지기 쉽다. 더구나 깊이와 무게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보니 관념유희에 그치기 쉬우므로 반드시 관념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실념화하지 않으면 시가 안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상어를 시어로 바꾸지 않으면 역시 시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번번이 하는 말이지만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이 남과 다른 참신성이 있어야하고 텐션이 느슨하게 풀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에도 많은 응모작 가운데 김혜경씨의 “고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 외 4편을 당선으로 뽑는다.


김혜경씨의 작품에서 선자는 무엇보다 오랜 습작기간을 감지하게 되었다. 습작기간이 긴 사람은 글이 풍기는 뉘앙스가 다르다. 우선 소재를 선택하는 시각이 남 다를 뿐 아니라 간결한 이미지에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가 숙달되어 있다. 김혜경씨의 작품은 무겁고 고달픈 그리고 어두운 현실을 오히려 가볍게, 익살스럽게 재미있게 기발한 표현으로 담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엔 마음 아린 아픔이 깊숙이 감춰져있게 하는 매력을 풍긴다. 대단히 숙달된 솜씨로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 걸음 더 성숙된 대작을 쏟아내기를 기대하며 당선작품으로 뽑는다. 대성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지향

 

 

 [당선소감]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는 “시란 신의 말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시 쓰기가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시 쓰기는 신(神)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를 쓴다. 따라서 나도 이 신의 영역을 감히 침범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시란 나의 커다란 참회이다”라는 괴테의 말에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삶의 경험에서 얻은 기억을 언어로 재생하고자 한다. 그것도 성찰과 반성이 담긴 시를 언어 건축하고자 한다. 그리고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시인이 되고자 한다.

 시를 사랑하도록 등불을 밝혀준 관동대학교 현대시창작과정의 심은섭 선생님께 옹달샘 같은 맑은 감사를 드린다. 시인은 견자(見者)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그 뜻을 패랭이꽃 한 잎만큼 알 것 같은 지금, 서럽도록 되새기고 싶다. 또 한 토막의 문학의 이야기로도 밤을 지새울 수 있었던 현대시창작과정 문우들, 그리고 강원현대시문학회 회원 여러분, 조, 이, 최, 정, 배, 강, 송, 김, 박, 신, 함, 홍, 노, 허, 유 등등에게 이 영광의 길을 함께 걷고 싶다. “혜경이는 한비야다. 고로 한비야는 혜경이다”라는 은유로 내 생애를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던 비야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슬픈 영혼들이 육신의 우듬지에서 명멸하는 5월, 나의 어머니는 내가 쓴 한 편의 시(詩)이며, 나의 상징이다. 아무리 불러도 싫증나지 않는 엄마! 이제 막내딸이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 “어떤 사람이든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나의 엄마! 지금까지 애써 주신 모정에 눈물로 감사드린다. 그리하여 기쁨은 싹으로 틔우는, 슬픔은 꽃으로 피우는, 고독은 붉은 사과 한 알로 영글게 하는 시를 쓰려고 한다.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오빠, 언니, 조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물렁물렁한 문장, 소금기 없는 싱거운 시적 표현, 언어를 다루는 장인 정신이 부족한 데에도 문단에 첫발을 내딛게 해주신 「시인정신」 양재일 주간님과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더욱 정진하겠다는 약속 하나 더 드린다. 아무튼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시인 프로필]

 

 

-김혜경

-충남 보령출생

-관동대학교 현대시창작과정 수료

-강원현대시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