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제20회《현대시학》신인상 당선작]- 월요일 생각외 4편 / 정시마

자크라캉 2009. 12. 21. 21:47

 

 

[2009년 제20회《현대시학》신인상 당선작]

 

 

요일 생각외 4편 / 정시마

 

 

너희 집 화분에는 꽃이 피니
응, 행복한 우리 집 암술 수술들

 

벗어던진 삼각팬티가 오징어 대가리처럼 널브러져 있어
나는 빨랫줄에 샴푸 스프레이 냄새를 걸어두지

냉장고 속에서도 와인 코르크 마개는 왜 그리 깊숙히 박혀 있는지

 

감청빛 소파는 언제나 월요일
플라스틱 화분에서 도자기 화분으로 옮긴 꽃은 살아 있니
응,

 

낙지 같은 양말들 꼬불거리고
나는 성탄의 밤을 기억하려 애쓰지

 

티이브는 지겨워
불륜 이야기 뜨거운 만큼 판치는
영화 채널
낙타 사내와 박쥐 여자가 엉켜 채널 일흔 두 개 모두 돌려먹지

 

기형의 시간만 남기는 월요일 금간 화분들은 내다버려야겠어
더 이상 당신의 정물이 될 수 없는 암술 수술들
우리 집 화분에는 꽃이 피나

 

 

바라기 망원경

 

 

손거울만한 세상
신축건물들 헬리콥터처럼 떠오른다

 

거리에는 무표정한 초상화들
한 블록 지나면
편의점 오밀조밀 와봐 생맥주집 있고 백년 장의사 꽃 피운다

 

먼지들이 꽃잎을 갈아먹는 세상
21세기 철학관 지나 팝콘 튀는 화면 가득 노을극장
줄 서서 등 굽은 무료급식을 받는다
무심한 그 거리의 젊은 명자나무들 허리를 나부낀다

 

출근길에서
샌드위치는 아침을 목메게 하고
지갑 속 새로운 애인은
자주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도
비탈진 허기에 초점을 잃는다

 

지하도 모루 유적에서도
무간나락으로 떨어져버릴 게 뻔한
가는 발가락들 발등 위로 꽉 모아
귓구멍 같은 출구를 기어이 비집고 나간다

 

사람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 칼을 꽂은 심장 소릴 엿듣고
한 바퀴 해를 돌아서 넘쳐나는 햇빛 따라
한 점 첫 입맞춤 속으로 찾아든다

 


참나무 효과

 

 

1
  집 비웠다 돌아오니
냉장고 있던 자리에 굴참나무 한그루 떡하니 버티고 섰다. 캄캄한 눈꺼풀이 들어찬 나무 등걸 하나하나 여닫을 때 패킹 사이 다섯 손가락이 끼어 앗 나뭇가지가 휘청, 붉은 물살 일렁이는 냉장고 속은 오지게 가을이다.


  냉장고는 지금 나뭇잎이 빽빽한 숲으로 드는 꿈을 꾸나 보다. 문짝 패킹이 잠꼬대 하듯 콕콕콕 호호 입김 불어댄다. 돌아누운 간고등어는 유통기한 지난 꿈이 되어 있다. 더덕향 배인 입 냄새는 오이와 캔맥주가 차갑게 헹궈낸다.


3
  칸칸 검은 비닐봉지 부리가 부딪힌다. 꼬리 내린 채 둥지를 기웃기웃 살핀다. 나무는 손가락 마디마디 끊어먹고 시침 뗀 채 제 나이만큼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죽이라도 끓여 빈 뱃속 채운다.

4
  오랜만에 콘센트 꽂은 환한 굴참나무다. 곤쟁이 속처럼 나간 손가락도 마디마디 그늘을 푼다. 이 때다 싶어 숲은 천둥새 한마리 둥둥 날려 보내고 절구통만한 햇살을 둥글게 채운다. 이제야 울긋불긋한 단풍 웃음 콸콸 돌아간다.

 

 

직 아파트

 

 

 초인종이 울리지 않는다. 쌓인 지문들 일으키는 소리마저 시계소리에 팔려 오들거릴 것 같은 집. 백지 달력을 사방으로 걸어둔 알 수 없는 유일한 이웃사람.

 

 아침부터 영구차는 비상등 깜박거리며 경비실 앞을 돌아나간다. 저이의 저승길 안 갈 수는 없었던가. 그리 급한 것인가 생각하다. 아차! 여기가 지빈무의한 것을 이미 황천이었던 것을 그 사람도 나도 덤으로 얹혀살다 가는 걸까. 담배를 꺼내물고 눈빛은 언제나 허공에 두고 살던 이웃사람.

 

 어쩌다 산책길에서 만나면 만지작만지작 봄 향기를 드라이플라워 하고 나뭇가지에 손수건 걸어두고 행복해 하지 않았던가. 별빛과 이야기 나누고 애기새끼줄나비 파들파들거린 자리 빈 손 내저어 죽음 직전을 연습처럼 흡입하고 간 사내인가. 빈 초인종 질질 끌고 오는 소리가 나의 벽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온다.

 

 

 

뜻한 괴물

 

 서쪽 탑 아래 앉은 네 마리 사자. 더는 자랄 것도 없는 털조차 돌이 된다. 겨울이 등을 돌리자 마음의 연골을 접었다. 회랑을 두른 넓은 절집 바람이 공양으로 삼았다. 그가 내민 손도 꼬리도 시퍼렇게 묵언 중이다. 발등을 타오르는 민들레 먹고 탑을 훌 벗겨 하늘 귀퉁이 오리온 별자리 흩어놓았다. 고고학자들이 지문 끝으로 탑을 살라 달래어 내놓는다. 탑 속 무왕이 숨긴 금빛 글씨에 세상은 발칵. 그때도 사자는 형체도 없이 앉아있고 천진사리 천사백년 설법 조금씩 흘러든다. 성조차 구별되지 않는 중성이다. 별이 감싸고 있는 탑을 꺼내어 열대야 같은 눈 뜰 때 사리 아닌 것 없다. 저 돌 같은 사랑을 하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 사막에서 갈 곳 없는 발걸음 사랑으로 적선해야겠다.

 

 

[당성자 약력]


정시마(본명 정명옥) 1959년 울산 출생.2006년 108회 동서문학상에<주전리 바다>로 금상. 현재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시산맥시회 회원》 《영남시 동인》

 


심사위원/ 이수익(글). 정진규. 오태환. 이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