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목동 / 심지아

자크라캉 2011. 3. 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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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님의 카페에서 캡처

 

 

/ 심지아

 

 

 염소 무리 속에 앉아 풍경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본다. 염소 무리는 낮고 부드러운 능선처럼 이동했으므로 우리의 눈은 한없이 길고 얇은 바람의 손가락처럼 허공을 이루는 투명한 실오라기들을 건드린다. 신이 실수로 놓친 털 뭉치처럼 빛은 시간의 실타래를 풀고 우리는 우리가 배당받은 실타래가 자꾸만 엉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바람이 고여 드는 적막 속에서 머리카락은 침묵의 형상처럼 까맣고 아름답게 자란다. 어머니들은 머리채로 갓 태어난 아가를 위한 이불을 만들고 아기들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도착했던 사람들을 듣는다. 밤은 빛들의 무덤처럼 펼쳐지고 울어야 할 목소리는 없다.

 

염소 무리 속에 앉아 깊은 해류처럼 구름이 흐르는 것을 본다. 하늘의 물결을 읽는 새들 더러는 비늘을 떨어트린다. 손끝으로 비늘을 어루만지면 번개의 고동이 심장에 새겨진다. 아주 넓은 여백처럼, 여백에서 불어오는 북소리처럼 우리의 몸을 벗어나 펼쳐진다. 세계는 유배지처럼 고독하고 무성하다.

한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고 오래된 어둠과 빛이 새끼의 작은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다. 새끼의 숨결은 우리가 동굴 속에 두고 온 늙어 가는 연인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습하다. 우리의 귀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더듬는 귀머거리처럼 고요하고 절박하다.

 

초식동물의 어금니 사이로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눈꺼풀을 깜빡인다. 기억들은 나비의 날개처럼 공기를 흔들고, 공기는 우리의 살갗으로 스며든다. 오랫동안 말이 빈 목구멍으로 뜨거운 공기가 흘러나간다.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피리 소리는 아름답고 염소들은 잠든다. 피리 소리는 지평선과 수평선을 넘어가는 새처럼 깊은 잠 속에서도 눈을 뜨는 사람의 적막함으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는 조금씩 사람의 울음 소리에서 멀어지고 차가운 정수리에서 속이 빈 뿔이 돋는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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