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쁜여우>님의 블로그에서 갭쳐
빨강이 없으면 사과는 어떻게 익나 / 이영식
쫙—
홍로사과 한 개 쪼개본다
검은 눈알이 핵심에 박혀 있다
발화를 꿈꾸는 심지 같다
사과나무는 뿌리에 불을 붙이고 산다
가지, 이파리에 내리사랑 지피고
정념의 하루하루 초록에서 빨강으로
새끼사과들을 밀고 간다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도
피붙이를 밝히지 않는 무연고 노인처럼
저 빈 털털이 사과나무
병든 이파리 시름시름 내려놓는다
초록 빨강 다 써버린 물감상자
두개골 같은 달이 내려와 혼자 구르다 간다
2011년, 『미네르바』 봄호
[약력]
이영식
1956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희망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