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산벚나무 발목을 꽉 / 배한봉
비음산 용추계곡 소(沼)가 허연 얼음으로, 늙은 산벚나무 발목을 꽉 붙잡고 있다
연분홍 봄날을 계류로 흘려보내기만 했던 소(沼)가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고 겨울부터 미리 산벚나무를 온 힘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제 더는 용서 못한다고 이웃 영진이 할매가 바람난 영감님 허리춤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수태가 저승꽃같이 말라붙은 산벚나무
그래도 역정 한 번 내지 않는다, 뼛속 바람 소리가 거칠게 꺾어져도 삐쩍 마른 팔로 시린 하늘이나 휘휘 젓는
산벚나무
그 발목 붙잡고 입 꽉 다문 용추계곡
그러니까 소(沼)의 허연 얼음은 아무리 추워도 우리 오래오래 사랑하자는 굳센 맹세인 것이다
《문장웹진 201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