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얼음이 산벚나무 발목을 꽉 / 배한봉

자크라캉 2011. 2. 19. 12:43

 

 

음이 산벚나무 발목을 꽉 / 배한봉

 

 

비음산 용추계곡 소(沼)가 허연 얼음으로, 늙은 산벚나무 발목을 꽉 붙잡고 있다

 

연분홍 봄날을 계류로 흘려보내기만 했던 소(沼)가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고 겨울부터 미리 산벚나무를 온 힘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제 더는 용서 못한다고 이웃 영진이 할매가 바람난 영감님 허리춤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수태가 저승꽃같이 말라붙은 산벚나무

그래도 역정 한 번 내지 않는다, 뼛속 바람 소리가 거칠게 꺾어져도 삐쩍 마른 팔로 시린 하늘이나 휘휘 젓는

 

산벚나무

그 발목 붙잡고 입 꽉 다문 용추계곡

 

그러니까 소(沼)의 허연 얼음은 아무리 추워도 우리 오래오래 사랑하자는 굳센 맹세인 것이다

 

 

《문장웹진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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