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최고의 작품(詩)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 시 1000]데드 마스크 / 강기원

자크라캉 2009. 2. 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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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음영화미러마스크>에서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 시 1000]-125

 
 
드 마스크 / 강기원
 

  얼굴은 어디로 갔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는 생각한다
  문제는 늘 드러나는 속내
  얼굴은
어디로 갔지
  차라리 가면을 만들자
  포커 페이스
  흐린 눈에도 멍한 귓속에도
  석고를 붓는 거야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견고하게 붙는다
  미련하게 솔직한 혀도
  이 목 구 비 차례로 사라지고
  이름 없는 무표정의 얼굴 하나
  얼굴 위에 무겁게 덮인다, 납덩이처럼
  떼어내지 말아야 해 익숙해져야 하니까
  아침마다 그는
  만나야 할 로봇 같은 면상들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낯선 이목구비를 그린다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인자하게
  중요한 건 카리스마와 유머를 잃지 않는 일
  늦은 밤
  바퀴와 회전문 에스컬레이터와 칸막이 사이를 누비고 다녔던
  그가, 그가 아닌 그가
  무너지듯 잠자리에 든다
  가면 벗는 것도 잊은 채
  그 밑의 숨막힌 얼굴이
  뭉클하게 썩어가는 것도 모르는 채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또 다시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데드 맨 워킹
  얼굴은 어디로 갔지

 

월간 『현대시학』2009년 2월호 발표

 

 

[강기원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요셉 보이스의 모자』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세계사, 2005)와 『바다로 가득 찬 책』(민음사, 2006)이 있다. 2006년  제25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