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최고의 작품(詩)

[웹진 시인광장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시 1000]연애편지를 쓰자/김행숙

자크라캉 2009. 2. 1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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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전디카인사동(인물사진동호회)>님의 카페에서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 시 1000]-126

 

연애편지를 쓰자 / 김행숙

 

 
  어둠을 동그랗게 오려낸
  스탠드 불빛 아래서
  꿈결처럼
  너도 언젠가 그런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옛날 연애편지를 쓰자

  이 연애편지에서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밤바다의 등대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매우 어려운 것을
  꿈꾸는 눈동자나
  노래하는 심장과 함께
  그때 우리는 열렬해
  외롭기도 해
  그랬지, 나는 오래전에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갔지

  세게 두드렸으면 유리창쯤 깨졌을 텐데……
  피도 봤겠지
  너도 봤겠지
  오버over하는 건 연애의 본질일까, 실수일까

  지우개는 아직 하얗고
  밤중에 밀려나오는 지우개 가루는 검다
  모래로 쓴 글씨처럼
  애써 지울 필요도 없어!
  우리는
  내일 또 지워진 후에 아주 옛날식 연애편지를 쓰자

 

 

 

『시, 사랑에 빠지다』(현대문학) 2009년 2월호

 
 
 

[김행숙 시인]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9년『현대문학』에「뿔」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현재 고려대와 상명대에 출강하고 있다. 시집으로『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와『이별의 능력』(문학과지성사, 2007)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