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원주택마련하기>님의 카페에서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09년 올해의 좋은 시 1000]-123
그렇고 그런 해프닝 / 황성희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요.
검은 숫자들은 달력 밖으로 미끄러지고요.
내가 아는 글자로는 바람을 다 쓸 수 없어요.
일기장에 있는 그 많은 바람은 모두 진짜가 아니에요.
우주에서는 참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아침에 있던 별들이 저녁이면 사라지고
내일 아침이면 잊혀지고
다음 날 아침이면 전설이 되고
그 다음 날 아침이면 해독 불가의 암각화가 되고
그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떤 원숭이들은 낫 놓고 ㄱ자를 만들고
그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떤 원숭이들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별들의 역사를 짜 맞추느라 진땀을 흘리죠.
낮과 밤이 교대로 야금야금 제 몸을 지우는 줄도 모르고
우주에서는 참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거기가 밖은 밖인가요?
텔레비전 속에는 내가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유령 채널이 점점 늘어가는데
당신이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나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유령이라는 건가요?
당신이 유령이라는 건가요?
하긴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말은 현실에 충실하자!니까요.
이제 우리에게 시간 말고는 더 이상 남은 이데올로기도 없는데
거실의 불을 끄는 것은 여전히 쉽기도 하겠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데 말입니다.
계간 『시작』 2008년 가을호 발표
[황성희 시인]
1972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으며 200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엘리스네 집』(민음사, 2008)이 있다. 현재 '21세기의 전망'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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