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웃음 부의(賻儀) / 조성국

자크라캉 2009. 1. 22. 12:36

 

 

사진<성남초등학교>님의 카페에서 

 

음 부의(賻儀) / 조성국
       
           
잘 익은 복숭앗빛 같이 뺨 붉던
세침떼기 고 계집애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속에 들어와선
한 번도 빠져나간 적이 없는
고 계집애, 아비가 돌아가셨다
위친계모임에서나 잠깐 엿들은 풋정의 얼굴이 떠오르자
조문 가는 길이 설레었다
몇 십 년만큼의 애틋함이 콱 밀려와서는
영좌의 고인에게 절 올리면서도
힐끗힐끗 곁눈질로 훔쳐보던
일테면 내 꿍꿍이속을 알아차렸다는 듯
외동딸이던 그녀 대신 상주가 되어
나와 맞절한 남편이 피식 웃었다
신행 왔던 그의 발바닥을 매달아서
유달리도 직싸게 두들겨 팼던 것이
잠시 기억나서 덩달아 나도 피식 웃고
또 그걸 본 여자, 호야등 켠 곡을 잠시 멈추더니
은근슬쩍 뺨이 한층 붉어져 부리나케 모습을 감추자
상청 차일 속 어디선가 화투패 돌리다말고
누런 뻐드렁니 들어낸 듯
키들거리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참지 못하고 들려왔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08 겨울호.


[감상]


죽은 자은 누웠는데 산자들이 각기 자기들의 연애를 가지고 상청을 중심으로 한 능청에 싱긋이 웃을 수밖에 없다. 의뭉하고 졸렬한 시인은 피식 웃으며 문상객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버무리고 말지만 그 끝에는 눅진한 사랑의 슬픔이 만져진다. 생이란 이런 쓸쓸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되돌아갈 수 없는 먼 곳에 남아있는, 그러나 이미 내 몸에 배어 있는 향기의 애틋함 말이다. 그러나 내가 차지하고 싶었던 여자를 차지한 사내를 매달고 발바닥을 심하게 팼던 남자에 대하여 문학의 위로는 이렇듯 은근하고 따뜻하다.

 

 (이상국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