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얼음조각은 상처를 보이지 않는다./ 구재기

자크라캉 2009. 1. 22. 12:33

 

 

                     사진<이앤아이영어선교원>님의 카페에서

 

 

음조각은 상처를 보이지 않는다 / 구재기
 
                                       
얼음조각은 제 몸에
칼금을 남기지 않는다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간 상처를
눈물로 씻어 제 몸을 조금씩 소멸한다

눈물이란 상처를 다스리며
제 몸을 점점 소멸해 나간다는 것

아, 어머니는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사위어내셨을까
지상의 한 자리에는
인절미 같은 어머니의 눈물자국
그리고 눈물자국 속에는
보이지 않는 흥건한 상처들

푸르른 오월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또 다른 생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결혼식장 로비 한 가운데
 
얼음 조각은
제 몸을 삭혀내면서
작은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삭혀내는 눈물로
메마른 가슴들을 모두 적시어준다 


 

<문학마당> 2008년 겨울호 
 

[감상]


 아마도 시인은 화창한 5월 어느 날,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혼례식에 참석했던가 보다. 거기서, 그러니까 결혼식장 로비에서 장식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얼음조각을 만났던 모양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스쳐보고 지나는 얼음 조각에서 시인은 <눈물>의 의미를 읽는다. <눈물이란 상처를 다스리며/ 제 몸을 점점 소멸해 나간다는 것>. 그런 뒤에 시인은 다시 그 눈물에서 어머니를 읽어낸다. 누구의 어머니인들 이 땅의 과거의 어머니들의 생애가 안 그러했으랴. 희생과 고통과 가난과 비탄의 나날로 점철된 어머니들의 역사. 시인의 어머니 역시 그런 어머니 가운데 한 분이었으리란 짐작이 여기서 가능하다. 시인은 스스로 묻는다. <아, 어머니는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사위어내셨을까>. 그리고는 스스로 답을 말한다. <지상의 한 자리에는/ 인절미 같은 어머니의 눈물자국/ 그리고 눈물자국 속에는/ 보이지 않는 흥건한 상처들>. 그러고 보면 시란 것은 마음속에 존재한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대화 형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여기서 또 들게 된다. 단순한 생활의 삽화 하나를 얻어 어머니의 영상과 눈물의 의미를 새겨 넣은 아름다운 시라고 보아진다.

 

(나태주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