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長詩)鵬새 (1)/고형렬

자크라캉 2009. 1. 22. 11:13


                                 만화가 '김덕호'님이 그린 '만화 장자'의 '붕새 이미지'입니다.

 

                                               사진<호작질잘해야Ⅱ>님의 블로그에서

 

 

(2008년 『유심』겨울호)

 

(長詩) 새 (1) / 고형렬

 

 

   보라, 남쪽 하늘 위 만월이 빛나는 달빛 속, 등뼈 위로 검은 날개를 삼각 형상으

로 접어 올리고, 머리를 가슴 밑으로 수그려뜨려 태허의 힘을 끌어모아, 금강 발톱

으로 꿈을 움켜 차고 날아오르는 광휘 속 천공의 장대한 붕새를

 

   그 옛날 한 남자가 노래하기를,

 

   한 무명시인이 동쪽 산 속에서 달을 쳐다보며 노래하기를,

 

   붕새가 달을 부수면 지구는 유실될 것이다. 오늘 저녁까지 저 달이 작아지고 커지

고 만월이 되는 것 나는 천기의 가장 아래층 대기로 날숨과 들숨을 얻을 뿐 오직

그것이 나에게 허락된바 그것만이 온당하다

 

제1부 북명의 바다에 때가 오다

 

1, 태허에 들다

   1

   한 남자의 꿈은, 수묵색 북며의 바다에서 남명의 천지로 향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지혜를 초월하는 은유의 은유로서, 새로운 지혜를 찾게

하였으나, 

   그 뒤로 모든 지혜의 노래는, 절대숙명이 파괴된 세상의, 길 안에 있을 수밖에 없

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구멍으로부터 비롯되었나니, 그 일곱 구멍이 착규된 후*

 

   다만, 한 비조가 하늘을 날아올라간 비상을 상상할 뿐,

 

       * 장자 웅제왕 제7 일착일규, 칠일이혼도사

 

   2

   한 영토에 비견할 거대한 한 마리 붕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온 하늘을 가득 메

우고,

   천공 속으로 훨훨 날아가버린, 그 지극한 高飛는, 대해의 물결이 이루는

   무차별의 진공 그 외계로 향하는 것

 

   비록 요적한 가운데, 음양의 대변으로 한 마리 고기가 새가 되었으나

   이것은, 이 우주 속의, 그 어떤 생명의 출생의 인연에도 없는 일

   화생이라 할지라도 모체를 찢는, 아픔과 몸부림과 울음이 없을 수 없어라

 

   어찌 母가 고기가 되며 새가 子가 되는가,

   이것은 생사를 거치는 윤회가 아니므로 기이한 대변이다, 남자여

 

 

   3

   구멍이 뚫려 출구가 열린 순간, 신은 죽고

   붕새는 바다에 비상한 울음을 터뜨리고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미래로 나갈수록 인간의 기억 속에선, 그 울음소리 가장 먼 깊고 아득한 곳으

로 광속처럼 달려갈 때

 

   한 남자, 우주와 인간 뇌와 저 북명의 남과 북의 경계에서, 그 첫 비명을 듣는다

 

   그러므로 그 괴이한 새의 울음소리는, 온 천지에 붉고 검고 희고, 푸른빛만 남

기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는 이 지상에 있지 않아라

 

   아  영영 지워지지 않는, 희원의 꿈이며 상처여라

 

   4

   한 지평선 너머 너머까지의, 가이없는 한 마리 큰 새가, 다시 실상으로 나타나

거나 상상하기엔

   그 어떤 고난으로도 만나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칠규의 파멸을 아는 자가 없었고, 그 후 어떤 기호와 형상으로도 나타

나지 않았다

 

   5

   그날 하늘을 한 자락 의상처럼 휘감고 회오리쳐, 천공의 광풍을 일으키며

   붕새가 날아간 북명의 바다는, 광폭한 산도를 닫고, 영원의 본성을 잃어버렸을

것이니,

 

   황폐한 바닷가는 한 남자의 절대절명의, 그리움의 마지막 냉절의 순간이 되어

   잊을 수 없는 영원한 心傷인 채,

   불타버린 우주의, 대도의 흔적으로 남아, 그곳에 버려졌다

 

   6

   그러므로 저 북명의 바다, 그 혼돈의 기억은 어느 염색체 속에 숨어 있는 것인

가 그것은 왜 아직도, 꼼짝하지 않고 현현치 않은가

 

   아니 불타버린 것인가? 아니 바다를 허공으로 감싼 궁륭, 바다가 머리에 이고

있는 저 창공만이, 붕정만리의 시원을 증명하리

 

2. 지구의 북쪽

   1

   태허에 한 도가 있었고, 태허의 부경에 곤이란 한 어린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그 곤이 대곤이 되어, 어찌 그 북명의 바다를 뚫고 나와, 붕새가 되어 태공을 날

아올랐겠는가

 

   2

   처음 보는 형상,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듣는 날갯소리, 울음소리

 

   어느 현재의 ‘나’도 볼 수 없는, 수백만 년이 흘러 지나간 어느 날이었을 것

쾌청한 하루 낮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3

   태허부터 모든 색을 담아온 고고한 수묵빛 바다의 온화한 수평선

   파르르, 어떤 시야가 가닿는 잔물결의 파랑이, 북명의 바다 한가운데로 찾아왔듯

 

   알길 없는 대자연의 분노가 펼쳐지듯, 다른 새벽의 시간을 침략하듯

   한 자연은 다른 한 자연의 대변에 의해 색다른 자연으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4

   예정된 시각에, 거대한 고기 형상의 한 신체가, 처음 이 북명의 해상을 솟구쳐

오를 것이니, 그 형상을 감히 상상할 수 없으리

 

   하지만 또, 새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을 함께 잉태한, 옛 바다의 역사를 감히 누

가 노래할 수 있으리

   알 길 없는 물의 유전의 언어로만 떠돌 뿐, 實과 眞의 비의는 전수되지 않는 것,

 

   진인의 노래는 저 대창공에서, 날개 퍼덕일 것인가, 승천입지한 겨울산처럼 고

독한 남자여

 

   5

   다시 그 익숙한 과육의 대륙풍이 불어오는 수만 년이 지난 어느 유월, 어느 날

   꿈속에서 그 일대 광경을, 처절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라, 그 옛날,대붕새가 떠나던 황량한 바닷가엔, 아무도 없었고

   아득한 하늘의 절벽길로 태양 빛이 내려오다, 다시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가 빛

속에

 

   자신의 눈을 감추고, 그곳에서 영원히 불타버렸는가

 

   6

   사위가 캄캄한, 반사광의 은은함으로, 하늘의 빛이 으슬트리며, 고치처럼 몸을

감을 때

   한 미지적 존재의 탄생을 기다리며, 침묵한 채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흘러간 억년의 세월이, 하늘에 빗살무늬햇살로 걸려 있는 것

같았고

   체가, 허공에서 흔들흔들 흔들리며, 티끌을 날리는 바람 같았다

   7

   북명의 바다는 물 분자 하나하나 안에서 들끓기 시작해, 하나의 성운의 띠를

이루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물질계, 그 까마득한 천공에, 어느 북명의 바다가 대체 있었

단 말인가

 

   내가 아닌 나는 대체 또 어디서, 으스러져 스러지는 자신의 육체를, 두 눈알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8

   천지의 비밀을 알 길 없는 치어는, 수많은 이 지구의 주야의 순환을, 알 리 없고

   이 지구가 또, 자신의 모태라는 걸 알 리 없다

 

   저 숭한, 송곳 같은 한 구멍이 꼭 있을 건 없는, 저 북명의 바다가

   자신의 출생지란 걸 또 일지 못함으로 숨겨야 할, 무지의 세계자체가 아니겠

는가

 

   어찌하여, 저 바다의 구멍에서 태어나게 됐는지, 오 구멍은 대체 무엇이란 말

인가

   저 북명의 바다 어디에 물구멍이 뚫리며, 물거품이 일어났다 무사로이 꺼진단

말인가

 

   9

   아득한 세월 뒤, 혼돈의 태허가 폐쇄된, 구멍 없는 것*의 구멍이 열리고 만,

   저 허망한 구멍이 언제, 다시 열릴지는 알 수 없는 일

 

   오늘이 언제길래 그날이 오늘이었으랴,

 

   바람이, 대륙의 스텝과 거대한 구릉에 도착하고, 수증기가 일어나고 해가 가리

고 다시 하늘이 밝아지면, 바다가 조용한 가운데 전율하고 흔들리며, 내륙의 무성

한 원시의 나무들이 무사로이 찢어지고 쓰러졌다

 

   먼 산속 하늘에서 치던, 흰자위 석의 마른번개가 멎고

 

   10

   靑苔바위의 침묵이, 청하늘의 갈증이, 남자의 안색과 마음의 밑바닥처럼 적막한,

   숲과 하늘에 잠시 머무르는 듯

 

   차갑고 부드러운 바람이, 끝이 없는 지구의 남방 숲을 빠져나간 뒤, 이슬의 선

들거림으로 남아

 

   대체 이 북명의 바다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는 것인가,

 

   수천 년씩 수천 년 묶음이, 반복하며, 그들 곁을 지나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히 문을 닫았다

 

   11

   하나의 그릇 같은 캄캄한 우주의 한 대기 속, 한 남자의 비닐막 같은 뇌피질 속

의 검은 흙의 숲속과 이어진,

 

   그곳에서, 천공을 아수라장으로 뒤덮은, 빗방울의 언어들이 고끄라질듯, 무한

수직으로

   달려 내려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남자의 뇌 속에, 그의 모든 세포마다에, 한없이 부드러운 금

강의 유전인자로 박혔다

 

   알알이, 마치 그의 은빛 치아가 밀고 나오듯, 허무 속으로 꽃이 터지듯

 

   12

   무미건조한 세월 속에, 수많은 大化와 小化가 지나갔으리, 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빈 살의 손바닥 하나만 수없이 나타났다 사

라진 샘

 

   그리고, 그 모든 존재의 이름들은, 저 허공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성도 명도

꼬리도

 

   그들에게서, 언어와 기억의 물방울을 지운다면,

 

   풀 한 포기 없는 산과 들. 황폐한 돌과 바람과 태양, 쓰레기와 침묵 그리고 생명

의 기척이 없는 주야의 해변이 있을 뿐

 

   그것이 지금은, 그대들 탯줄의 물결인 양, 철썩인다

 

3. 회귀의 소리

   1

   모든 것은 제자리에 떨어져 만다라의 씨를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때부터

 

   자고로, 그리고, 더 아득한 시간의 무한대로 이어진 태허의 상고가

   저 수억만의 허공의 궤도를 따라, 무궁히 사라지고 밝아지고 스러지고 어두워

졌다

 

   기이한 씨들은, 어딘가에 가서 첩첩이 싸여, 단단한 속을 형성하고 속에 자기

형상을 숨겨두었다

 

   화강암의 무늬 같은, 나이테 속의 시간처럼, 개구리의 울음처럼,

   새털구름의 무늬 같은, 마음과 천공 속의 바람결 같은 씨들,

 

   2

   그 세월과 파편을 계산할 수학자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 수와 함께, 저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오직 황폐된 북명의 바다와 하늘 산, 그 沿邊의 해안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영봉들이 사처로 뻗어간 능선들만, 그 선사와 미생전사를 알고 있을까

 

   우주만이 그 자신의 시간을 축적할 뿐이다

 

   3

   바닷가에 버려진 지 오래인, 불타버린 돌들만이, 그날의 괴변의 비상을 안고

있다

 

   인간이 없는, 캄캄한 불명의 태초가 열리던, 북명의 신선한 바닷가의 무정처럼

 

   오직 말이 없는, 동녘을 향한 대륙의 산봉우리들, 검고 붉은 연봉들과 바위들

 

   모든 생명들이 돌아오고 있는, 겁의 시간 저 너머의, 미래 속에선, 검은 태허의

시간이 붉게 푸르게 피어나고 있었으니

 

   4

   이미 미래가 과거가 되어 다른 미래로 사라져가고 있었고,

   아무도 모르게 다시 한번, 과거가 미래가 되어 질주해오고 있었다

 

   다만, 먼 수평선 너머 태산 같은 파도와 바람, 그리고 먼 산맥에 어둠의 폭우가

쏟아질 뿐

 

   우리는 이미 다 지나간 생을 기억하는 존재들, 기억의 암흑, 잔생의 복습, 한번

도 산 적이 없는 유기체들

 

   하늘을 찢어발기는 혹한의 세월만, 무진장 무진장 흘러가고, 흘러왔을 것이다

 

   5

   흙과 암석이, 얼어 터져 부스러기가 되었고, 그 사이에서

   태허의 이끼 같은 녹색 꿈의 언어들이, 왔다 갔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다시 돌아올 도가 없었을 것이다

 

   두절의 세월이 흘렀다

 

제 2부 기억의 예언

 

1. 최초의 징후

   1

   그 어느 백악기를 거쳤던가,

   밀림 속의 모든 원시식물들의 잎들이 떨어지고, 새로운 순이 나왔지만

   모두 순응하듯, 바람에 흔들이며

 

   각자 자기 생을, 아무런 의문 없이 살다, 쓸모없이 남지 않고 떠나갔다

 

   2

   지금도 그들의 생은, 저 산의 교목대 아래 지층 속, 먼지처럼 두꺼운 책처럼 잠

들어 있다

 

   진흙으로, 금강으로, 철광석으로, 화강암으로, 황토로, 수성암으로, 혜성층으로

   그들은 조금도, 돌아올, 생각 같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무정이다

 

   3

   돌아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일회의 목숨살이로 지상의 모든

생들은 끝이 난 것

 

   늘 하늘을 쳐다보는 남자여, 이곳을 찾아온 것들은 한 생의 이름을 이곳에 바

치고, 덧없이 돌아가려 한다

 

   떡갈나무 어미줄기와 그 나뭇잎과 같이, 마치 그 덧없음을 얻으려 한 생들처럼

 

   4

   그대는 유일하게 돌아가는 것을, 무담히 돌려 세우지 않았고, 가도록 놓아두고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을, 부러 내쫓지 않았다

 

   이곳을 영구한 영육의 본거지로 삼고, 자아를 찾는 자들의 무극한 희원은

   저 지구의 별 위에 가엾이 놓여졌다, 돌 없는 풍석처럼

 

   5

   천지가 울고, 그리고 모든 생명의 추억이 지나간 뒤, 그 자리에

   수직의 저 깊은 심층에, 층층이 잠든 것들이 찾아오는 때는, 하마 언제런가

 

   물결이, 파랑을 그리다 쓸고 갈 때, 시름도 없는 한 낮의 광선이, 대해의 물속을

어른거릴 때

   그 이상 아무것도 자울 것이 없을 때,

 

   하늘엔 무상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의 형상도 이름도 오고 간 일

이 없이

 

   저물고 터지며, 스러지고 새로워져 갔다, 허무의 오늘로

 

   6

   적도를 지나 북회귀선을 넘어가는, 쓸쓸한 태양의 허허로운 그림자들

   온갖 생명의 작은 입들이 뿜어내는, 부식토 향기가 천지를 진동할 때, 지상의

그 어떤 존재의 시선도 닿지 않았을, 한 남자의 상상 속에서

   만물제동의 바다는 불현듯이, 자아를 찾아 귀지만한 미지의 곤을, 하늘의 요

람으로 감싸안을 생각이었던가, 천사만고의 남자여

 

   7

   마침내 기다리는 자도 없고, 기다리는 것도 없었을 한 마리 상상의 물고기가

 

   그 기이하고 거대한 몸체를 위로 솟구치며, 바다를 사방으로 갈라져 괴어오르며

 

   머리를 하늘로 들이밀 때, 이미 비상의 날개를 준비했단 말인가?

 

   지구의 한쪽, 북명의 바다를 들이받을, 곤의 두상은 얼마나 작은 치어의 머리

인가

 

   어디선가, 마지막 부사의와 혼돈을 간직한, 등명접시의 불꽃 하나 가물거릴 것

 

   바로 자신이라 생각하는 그대 노래는, 어느 시간 어디에서 기웃대고 있는 건

가?

 

2. 곤과 붕의 시간

   1

   미완의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하늘 속의, 그 어느 태허의 불규칙한 지표 위

   항상 하늘에선 천뢰가 울고, 지상에선 지뢰가 울고, 사람들에게선 인뢰가 울렸었던

 

   비 내리면 그칠 때까지 비 받고, 주야가 오면 주야를 다 받아, 그 안에 욕망과

결핍 없이 깃들었던가

 

   한번 음이 가면 양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이 받아준 것이고, 음이 다 받아

지나가면 다시, 저쪽 천공 한쪽에 양이 나와 마중 하였으니

 

   2

   그것은 지구가 원이며 융했기 때문이었다

 

   양과 음이 대립하지 않았고, 하나가 되지 않고 둘이 되려고, 둥굶과 상극을 가

지고 반대쪽으로 돌아갔으니

 

   저 지극한 우주의 무궁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리

 

   3

   하늘과 땅과 인간의, 천지인 삼위 협화음

 

   도의 소요의 무위의 세계의, 음양과 생사와 태허의 혼돈이 그것이거늘

 

   하늘이 울면 땅이 울고, 땅이 울면 인간이 울었거늘, 그러나 그 누구도 서로를

울지 않는

   메마른 양명이, 총기 넘치는 우주와, 별과 밤의 소란한 시대의 구멍 속, 텅빈 동

굴 속

 

   대자연의 천지는, 도시와 문명의 소음과, 약탈과 모략의 중심 무대가 되고 만

지, 이미 오래

 

   4

   눈귀 없는 산들이, 달려가는 듯 멈춘 듯, 시간은 텅 빈 벽공에 부닥쳐, 길을 찾

지 않는다

 

   절대 시간이 망각을 입고, 짐승들과 인간들은 각기 다른 길로, 질주해간다

 

   끝없이, 마치 자신들에게도 저 대자연의 비밀처럼 끝이 없다는 듯,

 

   5

   그때, 바다가 하늘의 문풍지처럼 우르릉 우르릉 울기 시작했다, 곤의 해류인가

   북명의 바다의 울음, 그것은 잘못 울린 경적처럼, 한낮의 게으름 속에 지워

졌다

 

   한 대와 열대의 식물대들이 무성한, 수많은 울음들이 살아있던 고대의 지구,

 

   헤아릴 수 없는 울음들이 죽어버린, 시간과 시간의 거대한 벽 사이, 대자연의

신성한 혼돈은 구성과 질서, 계책으로 파괴되었다

 

3. 울음의 예언

   1

   혼돈의 무질서한 질서의 대자연에

   거대한 사령의 발자국과 주춧돌과 말의 소란이 늪의 숨구멍을 파헤친 뒤

 

   어떤 울음도 들려오지 않은 지 오래,

 

   붕새의 비상의 마지막 북명의 바다가, 지상에서 최초의 새로운 종언이 되려 한다

 

   2

   예언의 빛은 늘, 자연현상을 동반한다, 그것이 그들의 언어였다

 

   마른하늘의 태양에서 온 광선들이 휘어지고, 어느 것은 지구에서 불타,

사라졌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불연소의 플라스틱류처럼

 

   그 예언 속에서 시간도 하나의 포말의 비유품이 되고 말았다

 

   3

   거대한 시간이, 산과 바다에 급속하게 소멸하듯, 가시의 광선들이 달려가는 스

침에,

   지구의 모든 것이 훼손되고 말았다

 

   스쳐 지나간 것들은,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고, 스쳐 훼손된 것들은, 이미 붕괴

되고 있었다

 

   물체가, 언어 속에 반사되고 흡수되고, 속절없이 사라졌다

   이 무한에 가까운 죽음의 반복만이 저 대자연의 침묵에 응답하는 보시인가

 

   4

   온 지구의 영봉과, 그 아래 길을 막은 돌들이 흔들리고, 주변의 풀잎들이 키를

세워

   너무 일찍 모두, 이슬 잠의 눈을 떴다

 

   남자는 털끝까지 전율하면서, 정신을 한곳에 응시했다, 火點처럼 그리고 움직

이지 않았다

   지구 물리의 이상한 미진이, 전 지구의 구체를 껴안고, 떨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5

   검은 괴음이 우르릉, 바윗돌로 허공을 굴러, 북쪽 하늘로 넘어갔다

 

   아득한 단절의 시간들이, 뚫리고 연결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불길한 음향

 

   미천한 소통은 상대를 파멸로 이끌어, 거대한 태양의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다

 

   마구 충돌하면서, 번개처럼 달려갔다 어디론가, 예언도 상상도 허락되지 않은 채

 

   달아나는 무엇인가를, 찰나 곳에 붙잡기 위해 추격하듯

 

   6

   모든 상상과 예측을 앞질러 가버린, 천둥소리와 번개 불빛들은, 질주해간 그

하늘 끝에 걸려 있는 풍경들을, 치는 것 같았다

 

   픙경의 언어들은 곤두박질쳤고, 귓속 피아노 공명산자 속 금속 현이 우주를 때

렸다

 

   7

   붕새의 영혼이 우주 공간 속, 북명의 바다에서 그토록 오래 해서해 왔던가

 

   끔직한 대곤이 바다 밑에서, 스스로 가눌 수 없는 거대한 몸을, 탈바꿈하고 있

는 것인가

 

   무서운 눈을 만들고, 날카로운 가시 붉은 살점의 댓가지 볏을 치흔들며

 

   과연, 거대한 날개와 머리를 만드는 것인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8

   대해의 심연에 갇혀 있던, 암시와 조화는 무엇인가

   작은 언어의 씨앗이, 거창한 나무의 활탈한 형상과 아름답고 큰 꽃을 만들게

되듯

 

   어떤 알 길 없는 붕새의 제작소가, 저 북명의 바다 속에 있었단 말인가, 그곳에서

   털 수북한 괴이한 형상의 붕새가 갑자기 날아오른단 말인가

 

   9

   그러나 곧 전설의 붕새가, 첫 북명의 바다를 뚫고 나와, 두 날개로 허공에 펼치

고 날아올라와,

 

   바다는 일대 망강의 파란을 일으키고, 해변은 무자비한 붕괴 속으로 버려질 것

   어디선가 예리한 송곳들이, 수많은 구멍을 뚫고, 그리하여 더 이상 막을 수 없

을 때,

 

   모든 입자의 모든 구멍에서 모든 구멍으로 모든 것이 소통될 때

   이제, 마지막 숨을 쉬어야 하는 비극적 희극적, 최후의 최후 순간 그 종막에

 

   이 영혼의 주인공은 암벽을 뚫고나와, 순식간에 화다닥 화다닥 날개를 달

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불행하게도

 

   10

   무엇인가 물속을 미친 듯 돌아다니며, 비늘을 벗고 물이 겹겹 뭉쳐 깃털이 되고,

   거대한 신의, 날카로운 돌부리 같은, 길쭉한 부리의 새

 

   어두워지는 북명의 풍경은, 적막하고 쓸쓸한 세상 끝까지 달려가, 추락할 수

있는 그리운 곳이 되고 있었다

 

4. 그리운 化生의 기억

   1

   그 북명의 바다의 세월 속에, 아무 말 없는, 화생이 시작되었다

 

   남자는, 일체의 의심을 버리고 꼼짝 않은 채, 절벽처럼 서서 바라보았다, 그것

이 그의 절대 소임

 

   아 본래 곤은 대해의 영생어요, 붕은 하늘의 활공조라

 

   남자가 그에 대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권리도, 언어도, 사명도,

예언도

 

   그에겐, 단 하나의 정신이 내다보고 있을 뿐, 그것은 불혹이며 자연의 뜻밖

 

   2

   변신의 붕새는, 치곤이 대곤이의 대화에, 스스로 놀라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다른 세계이기 떼문이다

 

   음은 양에 양은 음에 놀라지 않는다, 먹어치우고 스며들고, 화하고 밀쳐내고,

사라지고 나타난다

   억만 겹의 무한 세월을 통해

 

  붕은, 무엇으론가 변하는 자신의 몸을 느끼며 따라 갔을 것, 그것이 자신이었을 것

  마치 저 천공 속에서 처형될 듯, 그 시간을 향해 나아가듯, 아무런 구려움 없이

 

   3

   석인의 남자는, 자신의 몸에 눈만 열려 있는 화석 같은 존재, 그가 바로 수많은

시간이 관통한 불의 육체

 

   그 한 인간의, 도처의 모든 혈연들이 이루어낸, 시간도 순식간에 사라진

 

   다만 그 언젠가 한 문장만이, 위로가 될지 모르는, 모든 자모는 폐허 위에 버려

진 채

 

   저 광대한 벌판과 의지 없는 천체와 지상의 막막한 쇄석 속에, 그 허무만이

   우리를 자책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고 좌표이다

 

   4

   시간은, 마술을 부리며 허무에서 풀려나오며, 억만의 가지로 갈라져 정지한 채,

계속 그 상공에 본질처럼 머물며, 그것은 마치 어떤 언어의 혀처럼

   또 봉인된 예언의 음성처럼

 

   허공에 정지한 신기루처럼, 완성되려 하는, 얼기설기한 무형의 조형예술 작품

처럼 그 모든 도의 모습은, 황단하고 기이하고 어설픈 형상으로, 잠시 사라졌다

나타난다,

   그런가, 모든 형상들은, 저 가상의 절대 허공 속에

 

   5

   남자는, 하늘에 나타날 붕처럼 자신을 일체, 의심하지 않는다

 

   맨틀의 마그마로 이동하는, 활화산의 용암처럼 점잖은 기척이 물밑으로 들어

앉자

   수면 밑의 모든 것을 어둠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먹장구름이 어른거렸다

 

   한 대륙의 땅거미 같은, 지상을 먹어치울 것 같은 대곤이, 북명의 일대 해상에

그림자를 놓는 중이었다

 

   물밑의 한 의문의 형상은,

   무엇인지 대체 알길 없으나, 어디론가 억겁의 광속의 무리를 이끌고 흘러들어

갔다

 

   남자는,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참았다

 

   6

   온 북명의 바다가 한 의식체의 감각처럼, 순식간에 모든 보이지 않는 불빛을

켜고,

   찰나 찰나에 몸을 뒤집으며, 철썩이길 파랑처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수경조억만천의 이랑진 물결이, 잎사귀처럼 순간에 시름 짓고, 사라졌다

 

   7

   물이 물을 울먹거리고, 어디에 자신의 마음을 둘 곳 없어, 급속회전을 일으키

며, 물살들은 어디론가 흘러갔다, 모든 이름들처럼, 얼굴들처럼

 

   그것들은 먼 곳에서 구릉이 되고, 구름이 되고, 해그림자가 되고, 바람자락이

되곤, 절벽이 되고, 폭포가 되고, 말의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남자는 슬픈 공간역이 되었다

 

   8

   대곤의 몸의 주변을 빠져나가면서 물살은, 산맥을 넘어가는 빛처럼 빨라졌다

 

   앙상한 해연의 검은 절벽들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꿈

이건만 꿈 속에서 보는 환성만이 실제인지 모른다

 

   검고 창대한 하늘 입구는, 마치 울퉁불퉁한 바윗산 같았고, 칼날과 수많은 연

장 같았다, 하늘에서

 

   飛昇의 길이 준비되고 있는 지, 구름이 울먹거렸다,

 

   9

   온 바다는 생사존망의 사색이 되었다,

 

   바다의 잔물결들이, 아득한 동서남북에서 마치, 헬 수 없는 난파선들처럼, 우왕

좌왕했다, 그러나 그들을 덮고 오는 흰구름 그림자들은, 환한

 

   남자의 백색빛 마음 같았다

 

   운무의 색채를 바꾸면서 갑자기, 천지의 일체 빛과 시선이, 그곳으로 유성처럼

달려 내려가자

   어디선가 찬란한 붕의 文彩가 수직으로 하늘에 걸리는 것 같았다

 

   10

   차라리 아득한 그 중심에 있고 싶은, 그 중심에서 영원소멸하고 싶은 남자는,

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수취인불명의 우편물이 허공의 한 장 낙엽처럼, 꼭두새벽 하늘의 유성처럼, 천

공의 풍랑 속으로, 날아가는 듯

 

   11

   모든 견고한 실체들은, 여기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어떤 하늘의 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북명의 해상에서 모두 사라지고, 불이

꺼지고 있었다

 

   바다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의 시간 속에 바람이 깃을 쳤다

 

5. 잠시, 잠적의 시간

   1

   물은, 대곤의 갑작스런 정지에 거꾸로 솟구쳐, 검은 하늘로 튀어올랐다

 

   곤이 해저에서 몸을 울크리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인가, 아

니면,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때를 기다기고 있는 것인가

 

   캄캄한 흐름이 뚝 멎었다, 모든 바닷물들의 파랑이, 침묵 쪽으로 머리를 향했다

 

   열 개의 수평선 너머 여린 생햇살들이 비껴가고 있었다

   어린 생햇살들만이 그곳 해안에서 주인공들이었다

 

   2

   남자는 문득, 아찔한 단절의 순간을 경험했다

 

   대곤이 해협 같은 거대한 지느러미와 두 발의 열 발가락을 해저 암반에 올려놓

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남자는 벼랑 같은 캄캄한 두려움에 떨었다

 

   무엇보다, 그 붕의 형상의 크기가, 상상되지 않았다, 가슴뼈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북명의 바다를 둘러싼, 대양의 검은 침묵 속에, 온 자연계가 긴장하였고, 구름

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자연계가 스스로, 자연의 자위와 운행을, 조심조심 조정하고 있었다

 

   3

   언어가 없는, 소통을 거부한 자연물들이, 그 자리에 붙박여 꼼짝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저 캄캄한 미궁의 해연은, 날개를 꿈꾸는 미궁의 해연의 한 魂氣의

정신은

 

   모든 도체의 소통의 구멍을 파괴하고, 빗물질계의 저 찬란한 천공의, 무중력을

향할 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4

   북명의 바다 너머의 일체 사물과, 생명들의 시각피질이 긴장하고, 마음은 불안

해졌다

 

   먼 동남향의 백월은 창백하게 떠, 그 흰자위 너머의 남향 옛 고향 하늘을 비추고,

   그 달의 더 먼 남향엔, 우주의 중심으로 나가는 길인 듯, 아련하고 흐린 남색의

허공이 하나 있었다

 

   그 속엔 무늬도 색도 없는 무엇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지상의 한 남자를 성

운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6. 회오리치는 바다

   1

   대체 암반에 걸려 있는 것인가, 암반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인가?

 

   그 크기와 길이와 품격을 알 수 없는 대붕이, 해저 바닥과 해수면 중간에 떠 있

는 것인가?

 

   숭고한 영혼의 붕새로선, 또 한 남자에게도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붕새의 긴 꼬리가, 심연의 절벽 사이에 끼어 있는 건지도 몰랐다

 

   2

   남자에게 대곤은, 배지느러미로 해저의 암반을 딛고 있고, 머리는 파도치는 수

면 가까이

   이미 접근해 있는 것처럼, 상상되었다

 

   마치, 북명의 암초에 거대한 침몰선이, 기우뚱 거리고 있는 듯,

   한 鳥國이 기우뚱, 서쪽으로 기운 것처럼, 혹은 심심풀이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

 

   그것이 그런 것이, 그 곤의 물체가, 너무나도 광대무변했기 때문

 

   까마득한 물밑의, 미지의 형상의 그림자가, 벌써 수면 밖의, 산경을 지워버렸다

 

   3

   남자는 얼떨결에 정신을 차렸다, 무엇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그 무엇이, 거대한 파도가 지나가면서 그 무엇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다,

섬처럼

 

   곤의 등지느러미였다, 가파름 절벽의 날카로운 돌능선 모양 솟아 있는 지느러미

 

   지상의 어떤 생명체 표피와 전혀 다른 물질의 세포로 이루어진, 검은 지느러미

날개

 

   남자는 공포를 느꼈다

   북명의 바다의 수중의 그림자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해저의, 그 ‘무엇’

이었다

 

   4

   바닷물이 이윽고 회돌기 시작했다,

 

   사위의 수평선 안에 있는 바닷물이, 거대한 원을 그리자, 그 동그라미 수가 점

점 늘어났다

   물결의 원형 속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날카롭고 짧고 신비한 휘파람소리가,

쉿쉿쉿, 쉴새없이 일어났다

 

   그 바람과 물결의 휘파람 소리 속에, 남자는 아득한 의식의 해저로 떨어져, 어

딘가에 닿는 것을 느꼈다

   북명의 바다의 물들이, 거대한 솥에서 끓기 시작한 것처럼, 회돌기 시작하며

괴어올랐다

 

   북명의 바다 저 바깥까지 모든 숨을 돌려받는 듯 주변이 엄엄해졌다

 

   5

   물살은 점점 더 빨라졌다

   해상의 공기도 새파랗게 질려갔다, 멀리 퍼져가는 파도를 따라, 공기도 회오리

쳤다

 

   북명의 바다 천지가 요동하면서, 동서남북의 모든 바다가 함께 흔들리기 시

작했다

   그러니까 해저와 북명의 바다 중심과 해상공, 그리고 동서남북의 수평선 일곱

공간과 물이, 흔들렸다

 

   어디선가 철석철석, 날카롭고 차갑고 세찬 물소리가, 세상을 수중에 넣고 흔들

었다

 

7. 바다의 울음

   1

   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순간 쾅, 하는 거대한 암반이 서로 마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북명의 아득

한 해상이, 경기를 일으켰다

 

   깊고 육중한 울림은, 온 해저와 지축을 울리고 멀어져갔다

 

   2

   텅 빈 해상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북명의 바다가 거느린, 몇 개의 수평선이, 까

무라칠듯,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 밑으로 달아났다

 

   북명의 바다는 자신을 잃은 채, 깊디깊은 천길 수렁을 만들고, 하늘과 함께 쿨

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아래로 쭉 빠져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3

   바닷물은 광대무변한 존재의 움직임에 이끌렸다, 해저의 존재가 물보다 먼저

빠져나가자, 물들은 멍멍한 이명처럼 울렸다

 

   마치 소리를 뒤에 남가고, 실체는 가마득한 상공으로 사라진 음속의 본체처럼

 

   세상의 모든 고요가, 이 북명의 유일한 혼돈의 바다로, 달려오고 있었다

   모든 상상과 의외와 공포와, 빗소리와 바람소리 세월 소리들이 앞다투어, 북명

의 가슴 잎에 달려왔다

 

   4

   바다가, 이상한 소리를 타기 시작했다, 바다는 어딘가로, 이상한 소리를 계속

보내고

   쉴새없이 흔드는 요령소리가 마두관음처럼 칠척이는 빗속을 밟고 지나갔다

 

   여자의 울음소리 같은 괴이한 물소리가, 질퍽거리기 시작했다

 

   5

   까마득히 먼, 상공의 미지의 바다 한 가운데, 물들이 다투어 울기 시작했다

   광속의 울음소리가 칠흙의 수평선에서, 그 너머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갔다

   다시 메아리쳐 돌아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무서운 순간의 장난처럼

 

   남자는, 다른 시간 너머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저쪽의 시간 너머 이쪽으로 힘껏

던져진, 하나의 기억의 조각....

   이것의 징후는 무엇일까? 음양의 시간이 아닐 수가 없는 혼돈의 시간 속

 

   6

   태고로부터의, 억만 층위의 물의 질서가 아니다, 갈갈이 찢어 먼지로 만들려는,

혼돈의 시간

   그 시간들은 남자의 뇌리에, 아슬하게 각인되지 않은 채, 스쳐지나 갔다

 

   그것의 여행은 이미, 수없이 이 지구 표면에서,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망각되어

왔다

 

   일체 만물 속에 흩어져 있는 한 원형이, 헤아릴 수 없는, 수증기의 밀어와 같은 바람

의 여행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허무의 집적이었을 것

 

   7

   남자의 눈알은 한계가 있었다, 스쳐가게 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 광경을 본 즉

시 잊어버렸으므로

 

   그래야 다음 광경을 겨우, 그 작은 눈구멍 속에서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 북명의 바다가, 하나의 작은 사유와 문자 속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포박된

채, 전율하고 있었으니,

 

   기괴한 소리, 계속 이어지고 이어졌다, 크르륵 출출출 쩌엉쩌엉 차르르, 큭큭

큭.....

 

   8

   서로서로 부닥치며 깨어지고 찢어지고 격리되고 이동하는 소리들이, 안팍에

서 위아래로 수없이 들려왔다

 

   서로 몸을 바꾸고 빛처럼 사라졌다, 풍음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사실은, 아무것도 의심할 게 없으며, 아무것도 부사의한 게 없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환상적 현재의 소리의 절벽과 계단과 허공에서, 또 다른 소리의 절

벽과 계단과 허공이 나타났다

 

   남자는 환성과 실제의 틈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9

   그 소리들만, 하늘에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는, 형상 없는 저 천계의 비웃음

   북명의 바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최초의 대변, 아름다운 혼돈의 대탈출이 추진

되고 있었다

 

   한 정신의 상상의, 소요의, 대변신의 길이 열리고 있었으니.....

 

 

제3부 海內, 경천지동의 광경

 

1. 사라지는 북명의 대곤

   1

   갑자기 북명의 바다 중심 해수가, 해면을 뚫고 하늘로 거대한 분수처럼, 솟구

쳐 올랐다

   솟구쳐오른 물은, 북명의 하늘에 떠 있었다, 북명의 바다는 그 하늘을 쳐다보

았다

 

   2

   해저에서 한 대륙이 융기하는 것처럼, 물바다가 전체가 들어오려졌다

 

   마치 바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해저의 판이 깨어져, 땅속이 터져나와버린 것처럼

   바다가 부풀어올라, 전체 바다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바다가 뒤집어지고, 바다가 바다 위에 가 있었다

   온 대양의 물들이, 북명의 바다 중심으로 쏴아, 쏴아 바람에 실려 달려왔다

 

   3

   저 하늘에 태허를 두고, 일체의 남김없이, 완전하게 무너지는 북명의 바닷속,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그 속에서,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가

   바다 전체의 불을 짊어지고, 위로 올라오는 것을, 남자는 분명히 보았다

 

   그때였다, 하늘 쪽으로 융기한 바다가 기우뚱, 물체의 양쪽으로 밀려, 아래로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4

  순간, 아니 그 일은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지만 언뜻

  무엇의 형체가 다시 보이는 듯했다, 무엇인가 물밑에 날아가는 듯한, 헤엄치는

듯한 저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한쪽 날개가 비수처럼 바닷속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 바다를 찢으며

끌려가는 것

 

   희미한 눈에 비쳐 천천히 다가와 들어오는 것

 

   광속으로 날아가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게, 공포

를 남기기 마련

 

   남자는 , 북명의 바다 위를 날아올라, 북명의 바다를 빤히 내려다보는 것 같

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이 바람 같았다, 육체가 없는 것 같았다

 

   5

   북명의 바다는, 전광석화 같은 긴장과 충격 속에서, 한줌 바다처럼 작아졌다

   어두어졌다, 바다가 스스로 불을 켜고 스스로 불을 껐다, 점멸이 계속 이어졌다

   깜박, 깜박 마치 어디론가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그 비상 속에서 바다는 정지

한 것 같았다

 

   그 반사는, 하나의 공기 방울로 혹은 빛처럼 움직였다,

   북명의 바다가 하나의 빗방울 속의 공기처럼 흔들리며 울기 시작했다

 

   6

   남자는, 숨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무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쾌락에 가까웠고,

고통은 아니었다,

 

   7

  곤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곤이 바다를 짊어지고 바다 위에 올라와 있었지만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곤의 형상이, 얼핏 물속에 비쳤을 뿐

   그것이 근처에 와 있다는 것을 육감족으로 알 수 있었고, 마치 거대한 하늘비

닐막의 물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어른거렸던 그 물은, 그러나 남자에겐 거대한 물의 벽이었다

 

   어떻게 저 거대한 물굽이의 산맥이, 해상의 공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인가

 

   8

   물은 하늘에 올라, 남자의 시야를 가로막았고, 건너편 하늘과 수평선은 자신의

존재의 시계를 닫아버렸다

 

2. 춤추는 물

   1

   곤의 날개 위에서, 억만의 파도가 춤추고, 세찬 해풍이 서로 사방으로 교차하

며, 불어갔다

 

   그 물들은 아래로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 물들이 자신들의 의지로 공중에 서서

춤추었다

   헤아릴 수 없는 바람의 이별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 바람들이 그 이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

   두 개의 바다와 바다로 갈라진 바다와 바다 사이에서

   곤의 머리와 입, 다리, 꼬리 어느 부분도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허공에 들려올려진 바닷물이 폭포를 이루면서도, 미처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서 출렁거렸다,

 

   허공 속에서 거대한 흰 부채들이 펼쳐졌다

 

   어마어마한 물의 양이 아직 알 수 없는 무언가의 등 쪽에서 대하처럼

쏟아져 내렸다

 

   3

   해상으로 올라간 공중바다의 물은, 해상의 물과 함께 너울거리며, 거대한 날개

의 춤을 추고

 

   모든 것을 삼킬 듯, 바다 위의 바다와 파도 위의 파도가, 하늘을 향해 혀를 날름

거리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기필코 지구 밖으로 벗어나려는, 어떤 정신의 조용한 광기처럼,

 

   물과 빛과 바람의 대혼돈의 해상, 그 어떤 시선도 없는, 주야가 광속처럼 달려

가는

   밀실 같은, 혹은 대뇌 속의 북명의 바다 위에서 혼돈은 홀로.....

 

   어떤 질서도 구성도 규칙도 없는 대자유의 바다, 자연의 본향의 바다에서

 

   4

   무엇인가, 환상인가, 실제인가, 환상 속의 환상인가

 

   환상과 실제는 분리되어 존재하는가, 함께 존재하는가, 그 환상과 실재 사이에

서 인간들이 경계를 이루며, 지혜와 불행을 함께 간직하는 것인가

   실제여도 환상이여도 상관이 없는가, 아니면 환상이 실제이고 실제가 환상인가

 

   물을 뒤집어쓰고 허공에 숨어 있는 대곤은, 언뜻 해양의 거대한 양수 속에 들

어 있는 산 같았다

 

   5

   하지만 붕은 애벌레처럼 태어나지 않을 것, 다른 종의 형상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것이 남자가 꿈꾸어온 노래일지 모른다, 세상만물의 지루함과 불변 속에서

   이 놀라운 돌발적 무연고의, 우화와도 다른 차원의 단계의, 아니 우주에서 최

초의

   이변적 출생 형식인, 이 화이위조의 대화생을, 곤도 붕도 모를 것

 

   아 조물주여, 도대체 북명의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6

   물이 곤을 허공 속에 정지시킨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너무나 거대한 물체였으므로, 순식간에 물이 바다 밑으로 쏟아지질 못했다

   해저는 앙상한 뼈대를 드러냈고, 내륙은 물바다가 되었다, 물은 쉴새없이 사방

골짜기 골짜기로 빠져나갔다,

   밑에서도 물이 위로 계속 치솟았다,

 

   바다가 바다와 충돌하고, 수백 리씩 공중솟구쳤다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무성음의 대충돌 속에서 북명의 바다는, 혼돈의 때를 만난 듯, 전혀 고통을 느

끼지 않았다

 

   7

   모든 화생과 혼돈의 중심이, 이 북명의 바다에 당도했다

 

   물은 계속 솟구쳐 대붕의 주변에 떠있었고, 바람살처럼 거대한 부속물들처럼

 

   하늘휘장처럼 바람에 너울거릴 뿐, 부정형체의 몸에 붙은 채 그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흐르는 자유로운 물도, 저렇듯 한번 붙은 까닭에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물은, 북명의 바다의 곤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기생하는, 생명 같았다

 

   8.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광음처럼

 

   세찬 비바람 속에, 희미한 곤의 머리와 꼬리가, 어느 쪽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곤은 북쪽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든 것 같았다, 아직도 곤의 몸통과 꼬리 부

분은

   북명의 바다 깊이 박혀 있었다

 

   곱사 등 같은 곤의 높다란 등과 불쑥 튀어나온 머리 끝 부분이 슬쩍 보였을 뿐

 

   아득한 북명의 검은 바다는, 대곤을 수면 위로 밀어내며, 또 해저 속으로 잡아

당겼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야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것인가

 

   9

   순간, 남자는

   저 대곤의 화이위조의 현상에 대해 의심했다 지금 저 허공의 물속에, 일부가

보이는 저 물체가, 과연 물고기인지 새인지

   사실 남자는 그것이, 이미 붕새의 형상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물고기 곤이 飛鳥가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다만, 의심을 버리고 저 조화의 일대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10

   아직 물속에 있음으로 붕은 대곤이었다, 그러나, 이 곤은 대해 속의 대곤이 아

니었다

 

   공중 물속에 떠 있는 곤으로, 해저와 수면 사이에 멈추어 있는 대곤

아직 때가 아니었던가, 그 때가 아이었던가

 

   대곤은 대해에 묶여 있었고, 다만 바닷물은 하늘로 넘쳐나고,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는, 대소요의 대혼돈의 북명의 하늘과 바다

 

   11

   천지는 태허의 혼돈의 바다에 갇혔고, 대곤은 고요 속에서 잠든 듯싶었고, 남

자는 이 혼돈의 바다에서 비로소 실감을 느꼈지만,

 

   우리에게 있을 이 대혼돈의 출현이, 아름다운 시초이자 종국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곳의 대곤의 실감만 있을 뿐, 그리고 남자의

생각과 문장뿐

   광경은, 기억은, 화석이 되고 말 것이다

 

3. 저것은 새다, 새다

   1

   얼마가 경과했을까, 공중 위로 오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크게 내려앉으면서,

괴이한 형상이 나타났다

 

   붕새의 머리 형상이,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북명의 바다의 상공의, 거대한 물풍

선의 물속에 비치는 그것은

 

   이미 곤이 아니었다, 거대한 붕이었다 분명한 새의 형상을 한 둥근 원형

 

   붕새의 출현을 연출해주듯, 붕새를 둘러샀던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붕새

의 모습이 나타났다

 

   남자는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확인하듯, 계속 자신에게 주입하듯 소리쳤다,

새다, 저것은 새다, 새다, 새다..... 새다.....

 

   2

   억수의 폭우가 그치고, 칠흑의 구름과 어둠이 걷히고

 

   멀리 동쪽 바다에 나타난 아기해가, 파도치는 양수의 해수를 어루 비추면서

   잠시 뒤, 흰구름 속으로 살며시, 비켜서 사라질 적에,

 

   이윽고,

 

   공중의 물이 찢어지기 시작했고, 그 흘러내린 물 위쪽에, 한 마리 붕새의 홀연

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참고자료. 1 ]

 

붕새가 만리를 날아감. 즉, 머나먼 여로나 앞길이 양양한 장래를 뜻하는 말이다. 또는 범인으로서는 생각도 미치지 못하는 원대한 꿈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 ‘소요유’편에서 시작된 말이다.

 

붕자를 사전에서 보면 ‘큰 새’, ‘상상속의 새’ 등으로 쓰여져 있다. 전국시대 도가의 대표자 장자는 <소요유>편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북해의 끝에는 곤이라는 이름의 큰 물고기가 살고 있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모른다. 그 곤이 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된다. 붕의 등도 몇 천리의 길이인지 모른다. 이 새가 한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구름처럼 하늘을 덮어버리고, 바다가 출렁거릴 큰 바람이 일어나는데 단번에 북해 끝에서 남해의 끝까지 날아간다.

 

제해라는 이 세상의 불가사의를 잘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붕새는 바닷물을 차 올리는데 3천리나 되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르며 9만리를 여섯달 동안 쉬지 않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날개를 한번 접고 쉰다고 한다.


한번에 9만리를 나는 대붕을 보고 작을 새가 이를 비웃으며 말했다.


“대관절 저것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기껏해야 대여섯 자 숲 위를 날뿐인데 은근히 재미가 나는데.”
이는 평범한 사람은 위대한 뜻을 품은 이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장자는 자연속에 묻혀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꿈꾸던 인물이다. 그가 이 엄청난 새를 이야기한 것은 세속의 상식을 뛰어넘어 무한한 자유의 세계에 거니는 위대한 자의 풍모를 말하려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되어 ‘붕곤’ 또는 ‘곤붕’이라 하면 상상 할수 없을 만큼 큰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붕도’, ‘붕정’은 웅대한 계획이나 포부를 의미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이에게 ‘앞길이 구만리 같다’라고 말한다. ‘붕정만리’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속뜻은 평범한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심오하고 원대한 목적을 의미한다.

 

 

 [참고자료. 2 ]

 

 장자 제 1 편 소요유(逍遙遊)

1
북명에 물고기가 있었다. 이름은 곤이다. 곤은 크기가 몇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이 물고기가 변해 새가 되었는데 새의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 넓이도 몇 천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가득 뒤덮은 구름을 연상시킨다.
붕은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옮아가려 한다.남명은 바다이다.

2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 파도는 삼천리나 솟구치고 붕새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위로구만리까지 날아오르는데 6월의 바람을 타고 간다.

3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호흡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푸르른 하늘빛은 바로 하늘이 띠고있는 빛깔일까? 아득하게 멀어서 끝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또한 이와 같을 따름이다.

4
예컨대 물이 많이 고이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는 법이다. 한 잔의 물을 움푹 패인곳에 부으면 겨자씨를 배로 삼을 수는 있으나, 잔을 그곳에 띄우면 곧바로 바닥에 닿아버린다. 물은 앝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람이 두텁게 쌓이지 않으면 붕과 같이 큰 새를 지탱할 수가 없다.따라서 붕은 단번에 구만리를 솟구쳐 바람이 아래에 충분히 쌓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다음에야 비로소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채 도중에 아무런 장애없이 남쪽으로날아가는 것이다.

5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날아도 박달나무나 느릅나무에 부딪힌다.게다가 종종 나무에도 이르지못한 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지. 그런데 어찌하여 붕은 구만리나 솟구쳐 남쪽으로가는 것일가?
교외로 나가는 사람은 세끼 식사만 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배는 부르다.
백리길을 가려는 사람은밤새도록 식량을 찧어야 하고, 천리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세달 동안 식량을 모아야 한다.
이 두벌레가 어찌 이를 알겠는가!

6
편협한 지혜는 탁트인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목숨은 긴 수명에 이르지 못한다. 어찌 이를아는 가? 하루살이 버섯은 한 달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 하루살이와 쓰르라미가 바로 수명이 짧은 생명체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 살고 있었는데 5백년 동안을 봄, 5백년 동안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또아주 오랜 옛날에 대춘이란 나무가 있었다. 8천 년 동안을 봄, 8천 년 동안을 가을로 삼았다 한다. 그런데 팽조는 요즈음, 오래 산 인무로 특히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오래 살려고발버둥친다.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7
궁발이 북쪽에 명해라는 바다가 있다.
그 곳에 물고기가 한 마리 있었는데 크기가 수천리에 달해정확한 길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물고기 이름은 곤이다.거기에는 새가 한 마리 있었느데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은 태산과도 같고 날개는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도 같아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구만리나 솟아오른다. 그름 위로 솟구쳐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연후에 남쪽으로날아간다. 이처럼 남명으로 날아가는 붕을 연못의 메추라기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놈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힘껏 날아올라도 몇길 지나지 않아 아래로 다시 떨어져숙대밭 사이를 나는 것이 고작인데 저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