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공용터미널 뒷골목엔 염천(炎川)이 흐른다/유리아

자크라캉 2009. 1. 22. 10:55

 

                                       사진<김천서부초등학교21회>님의 카페에서

 

웹진 [시인광정]. 2008. 가을호

 

용터미널 뒷골목엔 염천(炎川)이 흐른다/유리아


 

  신탄진 터미널 뒷골목에서

  길을 놓쳤다

  평상이 있는 담뱃가게 모퉁이를 꺾는 순간

  방금 전 누군가 돌아서 나간 골목길이 스멀스멀 물살을 일으킨다

  정박할 곳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내의 뱃머리를 집어삼킨다


  부러진 갈빗대를 끌고 와

  새파란 정적이 될 때까지

  물살을 찢고 제 몸을 헹구어

  순한 물짐승이 되어서야 돌아눕는 사내


  물비늘 촘촘히 박힌

  사내의 옆구리엔

  흘러간 옛 애인 집 문패가 걸려 있고

  천식이 깊은 아내의 후미진 골방이 있고


  저 수몰지구 비탈길엔

  그 해 가장 깨끗한 첫 서리가 내리기도 했을 것인데


  내 몸속에도 마땅히 흘러야 할 곳을

  찾지 못해 고여 있는 급수 탱크가 있어

  꼭지를 틀면 쏟아지는 뜨거운

  폭포줄기가 있어, 가끔은


  염천炎川이 흐르는

  터미널 뒷골목을 쭈뼛거리며

  빈 담뱃갑을 구기거나

  괜한 구두끈을 고쳐 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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