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매화민박의 평상 / 백상웅

자크라캉 2009. 1. 2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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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랜친구를 위하여>님의 카페에서

 

화민박의 평상 / 백상웅
            
 
네모난 짐승이 매화나무 그늘을 등에 업고 기어간다
부러진 한쪽 다리를 벽돌로 괴고도 절뚝이지 않는다
발바닥이 젖어 곰팡이가 피었는데 박박 긁지 않고
마당에 네 개의 발자국을 천천히 찍고 있다
나도 짐승의 널따란 등에 그늘보다 무겁게 엎드린다
짐승은 매화나무 그늘을 담벼락 쪽으로 밀어낸다
틀림없이 한곳에 뿌리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
나처럼 숲속에서 도망쳐 매화민박에 묵었을 짐승,
평상이 되는 줄도 모르고 납작 엎드려 단잠에 들었다
등허리에 문신처럼 박힌 나이테가 성장을 멈춘 것은
놀러온, 도망친, 연애하는, 슬픈, 엉덩이 때문은 아니다
숲을 떠난 나무가 뿌리를 찾기 위해 남겨놓은 증거이다
네모난 짐승이 햇볕을 향해 남몰래 발자국을 뗀다
네모난 황소 같은 평상에, 평상이 될 것만 같은 나를
단단히 업고 숲속으로 돌아갈 것 같은 매화민박이다


                                     
<창비> 2008 겨울호.


[감상]


 창비 신인문학상을 받은 신인의 작품이다. 물리적으로는, 자력으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평상이 네발달린 짐승이 되어 풍경과 세계를 끌고 간다. 그 곁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평상의 주변부가 되어 납작하게 엎드려 있거나 평상의 타자로 존재한다. 나는 평상에 의하여 대상화되고 하나의 사물로 존치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인격들이 나를 하나의 물건으로 바라봐주는 이 즐거움, 이 그로테스크한 매화민박에 가 며칠 민박하고 싶다.

 

(이상국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