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캔, 또는 can / 마경덕

자크라캉 2009. 1. 8. 09:44

 

 

                                            사진님의 푸딩에서

 

, 또는 can / 마경덕

 

  뽀빠이 살려줘요! 올리브가 외치는 소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시금치통조림. 시금치를 먹고 뽀빠이는 악당 부루터스에게 달려가 올리브를 구해냈다. 미국은 힘이 센 뽀빠이를 등장시켜 어린이에게 시금치를 팔아먹었다. 어느 틈에 뽀빠이는 한국까지 달려와 라면땅*을 팔고 돌아갔다. 아이들은 시금치보다 겉포장에 뽀빠이가 그려진 삼양 ‘라면땅’을 더 좋아했다. 롯데는 ‘자야’로 맞불을 놓았지만 힘센 뽀빠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 바람에 제과회사는 한동안 재미를 보았고 뽀빠이 이상용도 인기가 치솟았다. 그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서면 육·해 ·공군은 모두 자지러졌다. 만화영화 한 편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다.

 

  1803년, 통조림은 전쟁통에 태어났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를 외치는 키 작은 사내가 전쟁에 미쳐 있었고 굶주린 병사들은 싸울 힘이 없었다. 그때 아페르라는 사내가 캔 속에 음식을 넣어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역시 그의 말대로 불가능은 없었다. 캔의 힘이었다. 1810년 영국으로 건너가 특허를 얻고 그 후 미국 보스턴에서 자리를 굳혔다. 프·영·미 3국은 캔의 원조였다. 깡통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프랑스에서 걷어찬 빈 깡통이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날아갔다.

 

  뒤늦게 통조림회사에서 뽀빠이의 힘은 시금치가 아닌 깡통의 힘이라고 열을 올렸다. 재활용 가능, 휴대 간편, 완벽한 밀봉으로 썩지 않는 깡통의 힘. 깡통 맛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통 속에 무엇이든 집어넣기 시작했다. 파인애플 옥수수 고등어 꽁치 분유 식용유…드디어 깡통 속에 브래지어 팬티까지 집어넣어 선물용으로 내놓았다.

 

  뭐니뭐니해도 깡통의 힘은 밀봉이다. 입이 열린 놈은 죽은 놈이다. 함부로 속을 보이면 위험한 캔,

 당신 제발 입 좀 다물어라. 입을 닫아야 산다. 차라리 혀를 깨물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can이다.


  * 라면땅 : 라면 자투리를 기름에 튀기고 볶아서 만든 과자.



  『시와사람』 2008. 가을호 소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