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산커피교육센터>님의 카페에서
[2008년 월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하반기 당선작]
'나무 라디오' 외 4편 / 이이체
나무 라디오
잎사귀들이 살고 있는 스피커, 한쪽의 귀가 없다.
나이테가 생기는 책상에 당신은 앉아 있다
주파수를 돌리자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허공은 종이를 찢어 한쪽 소리를 날려보낸다
나무로 된 음악은 숲을 기억한다.
모든 음악은 기억이 부르는 것
당신은 그것을 씨앗들에게 달아준다.
소리 없는 나뭇가지들,
뿌리들의 유쾌한 휘파람.
계절을 돌며 노래를 주파수를 녹음(錄音)하는 나무 라디오
뛰는 심장을 어루만지곤 했다
절벽에 뿌리를 내린 나무도 그와 같지
그것이 당신의 절규하는 첫 발음, 굽은 음색의 첫 싹
고사목 같은 목소리들이 자정을 알린다
스피커에서는 시퍼렇게 늙은 소리들이 절벽을 뛰어내렸지
소리를 채록하는 것은 나무들의 오랜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라디오의 청취자가 되는 거지
전파가 흘려주는 자유는 꼭 구부러져 있었네.
숲을 이루지 못한 소리들이 잎사귀를 늘어뜨리고
조용한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지 녹음하지 못한 울음들이 당신에게 갈 때,
스피커가 아닌 라디오를 끄지
절벽의 나무로 만든 스피커가 채록한 소리들은
다 휘어져 있지
기억해. 모든 소리들은 떨어지는 것들이야.
소규모 감정 공작실
어제 잊어버린 문장이야말로 완벽한 것임을 믿는다.
하얗게 질린 천장 아래로 기둥 하나가 내리뻗어 있고,
당신과 수작업으로 만든 감정들이 둘러앉아 있다.
나는 그것들은 내 눈의 무늬로 새긴다.
감정들을 만들고 전시해온 시간들이 지문을 닳게 했다.
담배를 피웠던 흔적도 남아 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해 물러 보이는 감정들과, 너무 오래되어 상해 버린 감정들 사이사이의 바닥에, 바닥에 세상에선 볼 수 없는 검은 꽃으로 흐드러진 담뱃재들이 내게 안녕 안녕 인사한다. 당신이 버려둔 담배도 있다. 담배를 끄려고 길게 비벼댄 자국들이 희끄무레하게 끌려간 주저흔의 골목길 같다.
일찌감치 잃어버린 웃음이 어떤 감정 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저 똑바르게 각진 웃음들. 웃을 수 있느냐 너는 웃을 수 있느냐.
다른 감정들은 울음이나 일그러진 눈두덩이나 씩씩거리는 입술로 무늬를 갈음한 상태다.
기둥에 맞닿은 바닥은 너무 깊은 교접에 무너질 리도 없다.
벽에 없는 창문이 불러들이는 구름들
문장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는 것은 나의 새로운 고질병,
나는 언제나 불모지에서 문장을 잃어버리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의 차이를 세공하는 버릇이 있다.
지문이 묻어나지 않게 되었으므로 수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새로운 감정들이란 퍽이나 밝은데 당신이 없다.
당신이 버려둔 담배는 오래 전에 넘어져 있다.
기둥이 되지 않겠다 기필코 쓰러지겠다.
말을 목구멍 아래로 넘긴다.
무늬가 없다는 건 올바른 일이지만 무늬가 없는 것일수록 삼키기 쉽다.
벽이 없는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온다.
빛의 줄기들은 창문을 찾는데 오래 걸렸을 것이다.
눈동자의 문신이 되어 상상하는 감정들을 본다.
내일은 빛이 돌아가는 순간에 있을 것이다.
공룡 스티커 박스
방바닥으로 바퀴벌레의 주검이 떨어졌다. 그 주위로 장례식을 치르듯 옷가지들이 모여 앉아 있지만 뼈에 맞는 옷가지는 없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동대문 쇼핑백들 끝으로 시선을 지나친다. 네모진 박스들로 쌓아올린 첨탑의 아랫도리, 초라한 귀퉁이에서 공룡 스티커들이 다닥다닥 붙은 어느 박스와 눈을 마주한다.
박스의 네모진 틈에서 뼛조각들의 썩은 냄새가 근조화환처럼 피고 있다. 바퀴벌레의 장례식은 나와 공룡 박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다. 죽은 바퀴벌레는 차갑지만 나는 만지지 않는다.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처럼 지루한 건 없다.
공룡이 냉혈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뼈를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
선풍기는 공룡 박스 냄새의 부고를 퍼뜨린다. 바람에도 모기들은 곡(哭)을 하며 현관문으로 향하고
살아서 걸어 들어오는 신발들. 뼈를 하얗게 내놓고 다니는 사람들.
뼈와 살은 서로를 옥죄는 상부상조
탑은 본시 먹구름 아래에 있어야 하는 법이다.
불현듯 박스들이 탑보다는 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현관문 저 편에서 소리가 죽는다. 뿌연 창문 뒤엔 애도하는 조기가 후두둑 물기를 떨군다. 거리가 한산하다. 박스 덩어리들 중에서 유독 공룡 박스가 높고 크다. 공룡 스티커의 탓인가, 그렇지만 공룡 박스의 밑은 바닥이다. 탑은 높을수록 좋은 법이다. 오래 전에서 공룡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룡들은 왜 뼈만 남겨두고 사라졌는지 묻고 싶으나 그만큼 늙고 오래된 것들은 없다.(실은 모두들 늙었다.) 바퀴벌레가 유일하게 그만한 노년이었으나 이미 죽었지 않나. 종신형의 고생물이 끝맺자, 나는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개어놓으며 죽음을 피한다. 뼈를 내놓고 멀뚱멀뚱 널브러져 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눕힌다. 공룡들의 임종은 적요하다.
살짝 열린 현관문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기를 보며 관뚜껑을 닫는다.
바깥에서 장례식의 만취한 망자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절그럭거리며 내 뼈들이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자각몽(自覺夢)
밤처럼 흘러내려온 영화관의 말석을 마주보며 스크린이 깔렸다
자막은 나의 피부였다
본 적 없는 꿈이 영사기 바깥에 있었고 눈 먼
나에게 꿈은 이미 음악이었다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야말로 가장 음악적이었다
노랫말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이
감정 이상이고 내가 살아갈 날들이란
인생 같은 영화 한 편일 것임을 깨달았다
보이는 것만을 믿어 온 세월이 죄악이었고
나는 조조할인만큼도 용서받지 못했다
유배지에서는 자막을 읽을 수 없었음에도 나는 죄의
삯으로 눈이 보이는 순간들을 부여받았다
장면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갈 때마다
음악들은 각자의 면죄부를 흥얼거렸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나는
한 마디 대사조차 듣지 못했지만 노랫말은 존재했다는 걸 알았다
참으로 죽음 같은 장면들이었다
피부를 갖지 못한 음악들이 꿈을 꾸었으며
꿈속에서만 매진된 영화로 스크린은 피범벅이 되었다
용서받지 못한 이들은 면죄부를 연주할 수 없었다
이산(離散)
나비의 날개에서 봄이 접힌다. 휘몰아치는 나선계단의 말미에 붉게 빛나는 대문이 있다. 등(燈) 대신 피를 밝혀 놓은 문설주, 바닥엔 낮잠을 깨운 기와(起臥)가 즐비하다. 열린 문틈으로 노랗게 익은 마당이 펼쳐지고, 원근법으로 늘어진 시절이 덩그러니 누워 있다. 지붕 아래 과년한 나무들을 베어 지은 툇마루에 기녀들이 앉아 꽃잎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눈길을 흘린다. 가장자리에서 가만히 타오르는 무화과나무, 불꽃이 몰래 살고 있는 나무의 후생이 푸르게 타오른다. 태양 대신 점점이 번쩍이는 꽃송이들이 하늘하늘 날아간다. 최후의 종교가 사랑방에서 단잠에 빠져 있다. 기녀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개 같은 부채를 휘둘러 불꽃을 시들게 한다. 불현듯 별채에서 순례자들이 바람결에 통곡을 반주한다. 서까래가 구불구불 흐르고 있다. 어느 계절, 어느 시절인지 분간할 수 없다. 순례를 가득 진 등짝들이 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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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체(본명 : 이재훈) / 1988년 충북 청주 출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휴학 중.
주소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選後感|
200여 분의 응모자들 가운데 예심을 거쳐 열 분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전체 응모자의 수나 전체적인 작품의 수준이 모두 예년에 비해 낮았다. 그러나 본심에 오른 열 분들은 모두 우리 시의 평균적인 수준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 중반의 젊은 응모자들이었는데 이 현상이 《현대시》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젊은 응모자들의 투고가 부쩍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본심에 오른 열 분은 가나다순으로 강동완, 김원옥, 김지율, 김환, 김효은, 박송이, 유민재, 이동규, 이이체, 조영민 씨들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작품을 통독한 후 이 가운데 김환, 이동규, 이이체, 조영민 씨들의 작품을 놓고 최종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중 김환 씨는 최근 젊은 기성 시인들의 답습과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 이동규 씨는 과도한 관념의 노출 등이 지적되어 논의에서 제외하였다.
최종으로 남은 이이체, 조영민 씨를 놓고 다시 논의를 했다. 조영민 씨의 작품은 분출되는 시적 에너지와 유연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상투적인 비유의 사용이 거슬렸다. 그에 비해 이이체 씨의 작품은 다른 응모자들과 견주어볼 때 개성과 만족할 만한 시적 수준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젊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도 하였으나, 논의 끝에 이이체 씨를 새로운 시인으로 시단에 소개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조영민, 김환, 이동규 씨도 앞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채(異彩)로운 이체(異體)들
이이체 씨를 추천한다. 이이체의 시는 문화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이 혼잡스럽게 뒤섞이는 특이한 풍경을 보여준다. 스피커에는 잎사귀들이 살고 있고 책상에는 나이테가 자란다. 그러니까 이 인공물들에는 자연의 세목들이 정령들처럼 뛰어놀고 있다. 뛰어논다고 했지만 그 역동성은 물상들 각각의 것이고 이질적인 물상들 사이에는 치명적인 어긋남이 변함없이 지속되어 그 활발한 움직임 자체를 의미 상실의 지속, 즉 죽음의 음울한 무도로 바꾸어버린다. "바퀴벌레의 장례식은 나와 공룡 박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다"라는 구절이 지시하듯이 말이다.
이이체 시는 이렇게 '죽음처럼 어긋나버린 상황'과 '흥분된 움직임' 사이의 온갖 관계에 대한 성찰 및 실험에서 특별한 정서체들을 생산한다. 그 정서체들은 이미지이기도 하고, 이미지에 대한 운동화 된 상념이기도 하며, 또한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기도 한데, '좌우지당간에'(!) 그 정서체들 안에는 동화와 이질성의 미묘한 변증법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자막은 나의 피부"라니! 세계는 자막을 통해서만 읽혀지는데, 그 자막은 나의 피부로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매우 이채로운 젊은 시인을 만나서 매우 기쁘다. (정과리)
늘 드리는 상투적인 말씀이지만, 본지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당선자에겐 축하의 말씀을 그렇지 못하신 분들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 : 원구식, 정과리, 박주택, 오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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