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지금은 다단계 시대/ 마경덕

자크라캉 2008. 12. 29. 19:32

 

 

                                  사진<홍실청실엉켜서>님의 블로그에서

 

 

금은 다단계 시대 / 마경덕

 

 

  쥐꼬리를 달고 살던 그가 어느 날, 꼬리를 바꿔 달았다. 퇴근 길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졸던 사내는 사라졌다.   

 

  쥐꼬리가 지긋지긋하다던 그의 마누라도 계모임에 여우 한 마리를 두르고 나타났다. 죽은 백여우의 뾰족한 주둥이가 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발톱이 사라진 네 개의 발이 가슴에서 덜렁거렸다. 여우눈은 노란 구슬. 눈을 빼주고 구슬을 박은 여우는 한치 앞도 보지 못했다. 늘 추위에 떨던 가녀린 목은 여우털에 파묻혀 따뜻해 보였다. 탐스런 꼬리를 쓰다듬으며 여자가 웃었다. 요즘 시대에 쥐꼬리가 꼬리예요? 침을 튀기는 입에서 빨간 구슬 파란 구슬이 떨어졌다. 그때마다 여자들은 쏟아지는 구슬을 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흥이 오른 그녀가 발딱 발딱 재주를 넘을 때마다 설핏 설핏 치마 속 꼬리가 튀어나왔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검은 가방을 든 남편이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타났다.    

 

  여섯, 일곱, 여덟…수십 개의 카드를 돌려막으며 곧 아홉 개의 꼬리를 달겠다고 캥, 캥, 밤마다 둔갑술을 배우는 그녀의 통장으로 수많은 걸음들이 다녀갔다. 신한국민우리농협기업외환, 심지어 마을금고와 우체국까지 여우들은 몰려갔다. 부산 대구 광주 여수까지 여우발자국들이 어지러웠다. 그녀의 핸드백엔 구미호를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흘렀다.   

 

  그녀에게 홀려 여우굴에 끌려간 내 조카는 삼천만 원을 치르고 겨우 풀려났다. 여우들은 부모와 친구, 사돈의 팔촌, 심지어 자식의 간마저 빼먹었다. 감쪽같이 등을 치는 순간 간은 튀어나왔다. 피 맛을 본 여우들은 점점 간덩이가 부어올라 더 세게 등을 쳤다. 벼룩 간까지 꺼내먹던 여자들은 간을 찾아 드디어 무덤까지 파고 들어갔다.

 

<시와사람> 2008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