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유를 사랑하라>님의 블로그에서
섬은 언제나 내게로 온다 / 마경덕
멀리서 바라보는 동안 정수리에서 동백이 터지고 서둘러 핀 봄은 끝내 자진했다. 자욱한 안개에 섬이 사라지면 울음을 물고 물새들이 이곳까지 날아왔다. 오랫동안 부리에 쪼인 울음을 읽지 못했다. 겹겹 파도를 덮고 잠이 든 목덜미와 젖은 발가락이 무엇을 붙잡고 버티는지,
묻지 않았다. 묶인 배들이 바람을 풀고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거리를 서성거렸다. 그 사이 해일이 두 번 일었다. 해협을 건너온 바람이 도시를 강타했다, 우뚝 솟은 돛이 부러지고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론가 떠밀려갔다. 몸을 낮추고 바람을 버티는 동안, 징이 울던 방파제 끝에서 젊은 여자가 시퍼런 물길로 뛰어 들고 늙은 사내는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바람보다 사람이 두려웠다. 섬은 얼마나 무거운 닻을 가졌을까? 그때 처음으로 무게에 대해 내게 중얼거렸다.
떠나온 뱃길이 아득하였다. 번번이 섬을 스쳐 갔을 뿐, 끝내 뱃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섬은 철따라 안부를 부쳐왔다. 둘둘 뭉친 신문지를 풀면 머리칼처럼 엉킨 파래자반이 부서져 내렸다. 그때도 말라버린 심장이 버석거렸다. 한 계절을 내처 앓으며 자주 넘어졌다. 밤새 뒤척거린 잠속으로 짠물에 절은 맨발이 달려왔다. 오래 뭍을 떠돌던 내 뿌리는 물밑으로 뻗어 있었다. 나를 당기니 늙은 섬 하나가 딸려왔다.
<다층> 200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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