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매달리다 / 마경덕

자크라캉 2008. 12. 2. 12:57

 

 

사진<사진 속에 멈추어진 시간들>님의 paran 푸딩에서

 

달리다 / 마경덕



  매달림에는 아슬아슬, 간당간당, 데구르르가 숨어있다

 

  그날, 허공을 놓친 S여객기에서 백 개의 비명이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벼락 치는 소리가 허공을 찢는 순간, 
  낮달은 태양빌라 마당으로 굴러 이마가 깨졌다
  옥상 호박덩굴을 감아쥐고 늘어지게 하품하던 나팔꽃 두 송이는 
  캑캑, 재채기를 해대었다 
  목구멍에 굉음이 걸리던 날, 식겁을 한 403호 새댁은 계단에서 굴렀다
  3개월 된 태아는 아직 손이 없어 탯줄을 잡지 못했다

 

  303호 여자가 손톱을 기르는 동안, 옛 남자는 뾰족한 손날을 피해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변심한 애인에게 삼 년째 매달린 여자가
  막힌 수챗구멍을 꼬챙이로 휘젓는 사이 식탁에 놓인 맥주병이 뿅!
  숟가락으로 뚜껑을 따고 여자에게 매달렸다. 병뚜껑보다 쉽게 열린
  45Kg 몸에서 100톤의 울음이 튀어나왔다. 403호 새댁이 젖은 손으로 내려와
  띠링띠링 벨에 매달린 날이었다 
 
  한눈을 팔던 3층 발코니는 여자를 놓쳤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으악-
  소리가 허공에 짧은 밑줄을 긋는 순간, 얼결에 20년생 모과나무가 팔을 치켜들었다
  우지끈! 반쯤 꺾인 나무 모가지가 재빨리 여자를 받아 걸었다
  치명상을 입은 모과나무는 하얀 치마를 깃발처럼 흔들었다
  뒤집힌 허벅지에 주먹만한 커플문신이 매달려 버둥거렸다
 
  거지반 모과를 떨어낸 나무는 두고 두고 후회하는 눈치였다
  예닐곱 개 남은 모과가 간당간당 익어갈 무렵, 남자는 
  모과처럼 찌그러진 여자를 병실 침대에 묶어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와상상』 , 2008. 가을호